잊혀지면 안되는 참담함(펌)

박종태님의 마지막 글

김 영철 2009. 5. 4. 20:18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유서)


1페이지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깁시다.

책임지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본부가 움직이는 투쟁 만들겠습니다.

이 투쟁을 여러분들의 승리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동지와 조직을 믿고 함께 합시다.

동지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이 행복했고 소중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 박종태 -



2 페이지


사랑하는 친구 수진에게

당신은 내 친구였어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플때, 어렵게 투쟁할 때, 길을 잘못 가거나 힘들어 할 때,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곁에 있었던 소중한 친구 말야.


잘나가지도 못한 나에게 당신은 항상 힘이 되고 의지할 등받이 였어, 못먹고 못입고 맘편히 나들이 한번 못가는 재미없는 10년 결혼 생활 견뎌줘서 고맙고 미안해... 어찌보면 응석받이라 해도 탓하지 못할 만큼 당신앞에선 왜이리 작아 보이든지, 그래서 당신앞에서 오기피우고 자존심을 세웠던거 같네.

항상 미안하다고 하면서 또 미안하다고 해야 할거 같애

내 삶이 여기까지 인가봐 아니 사랑하는 당신과, 어여쁜 혜주 정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보네

쉼없이 걸어왔던 노동운동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희망을 만들기 위해 동지들과 함깨했던

소중한 시간과 인연도 여기까지 인가보네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 잘 놀아 주지도 못해

아빠가 안들어 오는게 좋다며 장모님을 더 찾는 정하가 아예 아빠를 영영 잊어버릴까 두려워



3 페이지


아빠가 없어 심심하다는 예쁜 혜주가 학교에서 기죽고 살지나 않을까 두려워

항상 어머니 이상으로 미운 동생 뒷바라지 했던 누님이 쓰러지지 않을까, 큰형과 형수님이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돼서 두려워

하찮은 존재인 나의 죽음이 결국 수천만중의 한사람으로서 취급되면 안되는데...


여보 하지만 짧은 생각에, 아니 착각인지 몰라도 본부와 동지들이 이번 싸움에 개입하고 힘을 모을거라 믿어


말이 막히네 원래 내가 말주변이 없잖아.

당신이 잘 하는데 그치..

전화하면 항상 말문이 막히는건 나고 당신이 계속 애기하던거 알지? 그건 그만큼 당신이 나에 대해서 관심갖고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일거야.


내 좋은점 보았다면 잊지말고 간직해줘

혜주 정하가 눈에 밟혀 뭐라고 애기하지?

정하야, 혜주야 아빠가 없더라도 기죽지 말고 엄마가 울지 않게 늘 엄마 곁에 있어야 됀다.

엄마가 건강도 좋지 않은데 힘들지 않게 엄마 보살펴 줘야 된다

항상 그랬지만 혜주하고 정하는 든든한 내 아이들이자 친구야



4페이지


여보 이제 가야돼

앞뒤 않맞는 글 몇자로 엄청난 일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십수년동안 이해해

주며 살았듯이 마지막 나의 선택을 받아 주었으면 하네

사랑하는 수진씨 그럼 안녕


- 못난 남편 어린 친구 종태가 -...


몇시나 됐을까

닭발에 소주한잔 마시는데 온 몸이 부르르 떨려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것은 생각 안나고 나쁘게 산것만 떠올라 정말 미치겠다.

낮에 계룡산에 갔었어, 맘먹고 올라갔는데 당신한테 말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종이하고

볼펜가지고 다시 내려왔어 경찰한테 힘없이 밀리는 동지들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보니 박종태 별거 아닌데도 지켜보는 조합원들 보니

여보 미안해! 사랑해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야

죽음의 문턱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을 나의 생애 최고의 여자요 친구였어

박종태란 못난 남편을 빨리 잊어



5 페이지


2시 45이네

내가 맘을 잘 먹은 걸까 정말 내가 죽어서 조직이 지켜지고

쫗겨난 조합원들이 눈치 안보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조합을 잘 간수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겟지?


본부가 나를 일개 조합원으로 일개조합원으로만 보지 않고 최선두에서 나서겠지? ㅇㅇㅇㅇㅇㅇㅇㅇ


애들한테 말하고 싶은게 진짜 많은데...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 나 진짜 농장하고 싶었거든

당신은 아닌데, 나는 그랬어 평온해.


이제 안쓸거야 하고 싶은 말이 막 생각나도 참을께, 해봐야 소용없으니까.

당신 우리 애들 생각도 육채도 건강하게 키워줘, 할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주문 오는 손님들한테 보낼 닭발 열심히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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