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승만의 장수들
-어떤 분이 이 승만의 인사에 대해 친일 인사를 중용하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시길래 참고적으로 간략하게 나마 자료를 올립니다.
1대 육참총장-이 응준--일본 육사 졸업/일본군 대좌(대령)--강,표 월북사건으로 해임.
2대 육참총장-채 병덕--일본 육사 졸업/일본군 소좌---명태 사건으로 해임되나 사실은 1사단장 김석원만 물먹음.
3대 육참총장-신 태영--일본 육사 졸업/일본군 대좌
4대 육참총장-채 병덕--2대 육참총장과 동일인물---축차투입으로 서부전선 6개 사단 중 5개 사단 완전 작살.(채병덕 본인도 괴멸 인정!)
5대 육참총장-정 일권--만주군관학교 졸업/만주군 헌병 대위---국민방위군 사건 등으로 해임. 도미 유학길.
6대 육참총장-이 종찬--일본 육사 졸업/일본군 소좌---그나마 비정치적 참군인. 이 승만에게 포살 운운의 극언까지 들음.
도망가다시피 미국 유학길에 오름.
7대 육참총장-백 선엽--만주군관학교 졸업/만주군 중위
8대 육참총장-정 일권--5대
9대 육참총장-이 형근--일본 육사 졸업/일본군 대위
-----7,8,9대 육참총장은 이 승만의 총애가 남달라 국군 최초의 대장 계급에 오름.
10대 육참총장-백 선엽--7대
11대 육참총장-송 요찬--일본군 지원병 출신/일본군 조장(상사), 특무조장(특무상사=원사)
12대 육참총장-최 영희--일본군 견습 소위 출신/일본군 소위
13대 육참총장-최 경록--일본군 지원병 출신/뉴기니에서의 활약으로 일본군 군조(중사)에서 현임 소위(일본군)
14대 육참총장-장 도영--일본군 견습 소위 출신/일본군 소위
15대 육참총장-김 종오--일본군 견습 소위 출신/일본군 소위---백마고지의 영웅
16대 육참총장-민 기식--일본군 소위 출신
17대 육참총장-김 용배--일본군 지원병 출신/일본군 하사관급(?)
18대 육참총장-김 계원--일본군 소위 출신---박 정희 시해 당시 비서실장.
---한국 전쟁 개전 당시 사단(당시 최고 전투 서열)장들
1사단장-백 선엽--7대, 10대 육참총장
2사단장-이 형근--9대 육참총장
3사단장-유 승렬--일본 육사 졸업/유 재흥 부친
5사단장-이 응준--초대 육참총장
6사단장-김 종오--15대 육참총장
7사단장-유 재흥--일본 육사 졸업/일본군 대위 출신---대 이은 친일!!
8사단장-이 성가--친일 군벌 왕 정위군 대위(?)소령(?) 출신---항일 중국군 대위 출신으로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음.
(심지어 군사평론가조차도 그렇게 알음.)
수도사단장-이 종찬--6대 육참총장
---그 외의 인사들
박 정희-전직 대통령--만주군관학교, 일본육사 졸업/만주군 중위
김 창룡-특무부대장--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이 승만을 매우 흡족하게 한 공로로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장, 중장 추서
오 익근-11사단9연대장--일본군 지원병/거창 양민 학살의 주범
노 덕술-헌병 중령--경성 고등계 경부(경감)
김 종원-대대장,연대장--일본군 지원병(하사관)/여순반란사건시 일본도 참수 사건 주인공 개전후 초급장교 즉결처분으로 해임되나 이승만의 총애로 경찰 간부로 특채
19대 육참총장-부터는 안쓰겠습니다.(본인의 능력부족으로 해방 전 행적을 알수 없어서) 그러나 이 표를 보면 최소한 이 승만의 총애를 받은 친일파 또는 친일파는 아니더라도 독립운동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인물들이 1948년 12월 15일부터 69년 8월 31까지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직을 장악했음을 알수 있는데요.
미 군정조차도 우리 입장을 고려해 육군참모총장격인 조선 국방 경비대 사령관을 광복군 출신 송 호성 장군으로 임명했으나 이 승만은 아무 거리낌 없이 친일파를 쓴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만 썼더군요.
처음 당시의 분위기는 일본군, 만군를 나온 자들은 처음에는 자숙하는 분위기를 보이다가 몇 번의 공로로 교만해 졌는지(일본군, 만주군 시절에는 꿈도 못꿀 벼락출세에.) 엘리트입네하며 되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였고 그나마 몇 안되는 광복군, 독립 운동가 출신의 장교분들은 숫적 열세를 면치못하며 집단 왕따로 고전하다가 전쟁을 겪으면서 비극적으로 사라져 갔습니다.(광복군 출신으로 개전 초 1사단 12연대장을 지냈던 전 성호 대령님은 50대의 고령으로 포항지구 유격전을 지휘하시던 중 전사, 또 앞서의 글에도 있지만 역시 광복군 출신으로 대대장을 지내시던 윤 태현 소령님은 위 참모총장 중 한 사람에게 즉결처분 당하는 어이없고도 슬픈 사건까지 있음. 송호성 장군의 경우 전향 여부를 떠나 납북은 확실! 그 잘난 구 일본군 엘리트의 졸렬한 지휘의 대패 덕분에. 가장 아쉬운 한강방어전의 영웅 김 홍일 장군의 경우 이유 조차 불분명인 채로 육군종합학교장 등의 비교적 한직을 전전하시다 전역.---대부분의 광복군, 독립군 출신 장군, 장교분들도 한직을 전전하시다 쓸쓸히 전역.)
그 자칭 엘리트들의 졸렬한 지휘에 의해 축차투입으로 개전 3일만에 전 8개 사단 중 5개 사단이 괴멸되는 대패(하늘이 대한민국을 도와 겨우 멸망을 면함.), 진두지휘 해야 할 군단장, 사단장(9사단장 최 석도 일본군 출신)이 앞장 서서 적전 도주하여 제대로된 전투 한 번 없이 작살된 3군단의 현리 괴멸(소속 2개 사단 완전 작살!)과 위에 열거한 개전 당시 사단장들도 사단을 최소 한 두번 씩은 작살냈음....
만일 이 자칭 엘리트들과 광복군, 독립군 출신 인사들이 계급장을 바꿔달았다면 최소한 채 모, 유 모, 최 모 장군처럼 졸렬하고 비겁한 지휘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승만의 인사는 한 마디로 자신이 옳건 그르건 무조건 따르는 예스맨만을 원했기에 위와 같은 남 부끄러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하튼 시류에 밝은 이들은 전후에도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 급성장하는데요.(모 알만한 기업인, 연예인 중에도 아버지, 할아버지되는 인물이 있음. 본인도 모 기관의 기관장 등 역임!)---여기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자조적 말까지 생겼음.
다만 이 나라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현은 과연 언제쯤이려는지...하는 아쉬움 만은 제 가슴 속에서 메아리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