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그림 R&D

[스크랩] 서울 외곽 순환고속도로 노선검토 보고서--풍수분야 조인철님의 글

김 영철 2008. 9. 7. 01:34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노선재검토 위원회보고서
역사문화분야(풍수지리) 검토 의견서(2004.6.10)
조인철(자연과건축대표)

1.노선재검토와 관련한 풍수지리이론의 요약

1.1 용론(龍論)

풍수에서의 산(山)은 단순히 계량 가능한 물질로서의 흙덩어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되며 상상의 동물인 용에 비유하여 설명된다. 따라서 산을 이해한다는 것은 용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서 용의 강약, 귀천, 용의 출신등을 따지면서 시작된다. 이를 풍수에서는 ‘간룡(看龍)한다’라고 한다.

용의 성격에 따라 용의 종류를 분류하면 생룡(生龍), 사룡(死龍), 강룡(强龍), 약룡(弱龍), 순룡(順龍), 역룡(逆龍), 진룡(進龍), 퇴룡(退龍), 복룡(福龍), 병룡(病龍), 겁룡(劫龍), 살룡(殺龍)등으로 구분(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서울 : 민음사, 1998. p.86.)된다. 또한 용의 주종관계(主從關係)를 따져서 정룡(正龍 : 幹龍), 방룡(傍龍: 支龍)으로 크게 구분하기도 한다.

1.2 혈론(穴論)

혈이란 용맥(龍脈)중의 음양이 합국(合局)되고 산수의 정기(精氣)가 응결된 곳을 말한다. 즉, 서울의 혈(穴)은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위치가 되고 그중에서도 왕이 자리하는 곳이 된다. 혈의 종류로서 와겸유돌(窩鉗乳突)등의 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노선재검토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므로 생략한다.

1.3 사론(砂論)

혈 주위를 감싸고 있는 주변의 형세를 사(砂)라 한다. 특히 주변의 산과 물등에 빗대어 후현무(後玄武), 전주작(前朱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사신사(四神砂)라 칭한다. 여기서 후현무를 주산(主山)이라하고 전주작중 가까운 산을 안산(案山), 먼 산을 조산(朝山)이라 칭하고 주인된 산으로서 주산을 가장 중요시한다. 서울의 경우 주산이자 현무는 북악산(北岳山)이고 주작으로서 가까운 안산은 남산이며 먼 조산은 관악산(冠岳山)이 된다. 한편 좌청룡이 낙산(駱山)이며, 우백호가 인왕산(仁王山)이다.

1.4 수론(水論)

음양론(陰陽論)의 관점에서 볼 때 산은 움직임이 작으므로 음으로 간주하고 움직임이 큰물을 양으로 본다. 또한 산은 땅에서 비롯되었고, 물은 하늘에서 온 것이므로 각각 음양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기도 한다. 즉, 하늘을 남성 또는 아버지라 할 때, 땅은 여성 또는 어머니가 된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음과 양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가장 길하게 생각한다.

풍수에서 물을 따질 때 물줄기 형태와 물의 량, 그리고 물의 들어옴과 나감을 중요시한다. 특히 혈 앞을 흐르는 물을 명당수(明堂水)라하며, 길흉을 따지는 주된 요소로 본다. 서울의 경우 명당수는 청계천(淸溪川)이 된다. 회룡사의 경우는 회룡천(回龍川)이 명당수가 된다.\r\n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고 그 골짜기에는 물이 흐르게 마련인데 혈의 자리에서 볼 때, 물이 들어오는 곳을 득수처(得水處)라 하고 물이 빠져나가는 곳을 파구처(破口處) 또는 수구(水口)라 한다. 득수처, 파구처의 방위에 따른 길흉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산줄기를 음(陰)으로 물줄기를 양(陽)으로 판단하는 것은 따로 구분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다. 음과 양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항상 서로 묘합(妙合)이 되면서 상생(相生)의 상호작용(相互作用)을 하는 것이다.

2. 산줄기의 개념

2.1 용으로서의 산

풍수에서는 산을 용이라고 할 때 그 용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중요시한다. 산줄기를 따지는 것은 용의 진행방향(進行方向)을 따지는 것이고, 용의 면배(面背)를 따지는 것이다. 사람의 근본을 따지기 위하여 족보가 있듯이 우리나라 산줄기의 근본을 따지는 산의 족보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 1712 -1781)선생이 쓰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산경표(山經表)이다. 한편 우리나라 산줄기를 지도로서 표현한 것이 유명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 180? - 186?)선생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이다.

2.2 한반도 산줄기의 특성

통상적으로 한반도의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비롯되었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멀리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중국서부의 곤륜산(崑崙山)으로 연결되어 그 줄기가 몽고대륙을 건너서 백두산까지 연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곤륜을 조(祖)로 하여 이어온 맥은 우리나라 백두산(白頭山)에서 종(宗)을 일으킨다. 곤륜에서 백두산가지의 용맥(龍脈)은 탁월한 수준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충분히 밝혀져 있으므로 우리나라 풍수사상의 사실상의 태조산(太祖山)은 백두산(白頭山)이 되는 셈이다."(최창조,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서울 : 서해문집, 1990, p.192.)

백두산이 태조산(太祖山)이라는 것은 한반도내의 모든 산의 할아버지라는 상징적 의미 외에 실제로 한반도내에 있는 어느 산이든 궁극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산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산경표이고 대동여지도이다.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에서는 산을 하나의 독립된 점이나 덩어리로 보지 않고 선(線)적인 연결체 설명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반도의 산줄기는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구분된다. 산과 물의 상호관련성은 정맥(正脈)의 명칭에서 잘 나타난다. 한강(漢江)을 기준으로 북에서 내려오는 산줄기를 한북정맥(漢北正脈)이라하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산줄기를 한남정맥(漢南正脈)이라 한다. 금강(錦江)을 기준으로 금남정맥, 금북정맥, 낙동강(洛東江)을 기준으로 낙동정맥, 낙남정맥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반도의 산천체계(山川體系)을 섬나라와 같이 독립된 점과 덩어리로 이해하는 것이 차령산맥이니 노령산맥이니 태백산맥이니 하는 산맥의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의 출발은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지리학자 고또분지로(小藤文次朗)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야스쇼에이에 의해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석필, [산경표를 위하여], 서울 : 도서출판 산악문화 , 1995, p.10.)\r\n고또분지로의 산맥 개념은 전통지리와는 다르게 산줄기를 물줄기와는 분리해서 따로따로 생각한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그려진 야쓰쇼에이 산맥도는 지형(地形)보다는 지질(地質)을 기준으로 그려진 것이다.

고또분지로의 산맥개념에서는 ‘물은 산을 넘을 수 없고, 산은 물을 넘을 수 없다’는 풍수의 기초이론이 성립 되지 않는다. 즉, 고또분지로의 산맥도에는 산과 물이 음(陰)과 양(陽)으로서 상호관계를 가지지 않을 뿐만아니라 따로따로 표현되고 있다. 고또분지로의 산맥도에 나타난 산과 물은 개발하기 위한 자원으로서 지하자원(地下資源)이며 수자원(水資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또분지로의 산맥개념은 산줄기의 개념이 없는 섬나라 출신 일본인 학자로서 안목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또분지로의 산맥개념을 이해함에 있어서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를 중국과의 전쟁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간주하고 필요한 물자를 수탈하기 위한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산과 물을 줄기체계로 인식하는 것과 낱개의 독립된 덩어리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킨다. 산줄기를 신체(身體)의 구조와 같이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통지리의 개념이라면 낱개로 포장된 소비재로 생각하는 것이 고또분지로의 개념이다.



그림1 산경표 : 산경표상에서 산의 시작은 백두산(白頭山)이다. 백두산 바로 아래로 써내려간 산을 선으로 연결하면 한반도의 주맥(主脈)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산줄기가 된다. 백두대간은 산줄기의 체계상 가장 위계가 높은 것이며 백두산의 정기(精氣)가 직접전달되는 줄기이며 다음 단계인 정간(正幹)이나 정맥(正脈)으로 생기를 공급해주는 연결통로이다. 한반도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2 산경표상의 한북정맥 : 백두대간의 다음단계는 정간(正幹)이나 정맥(正脈)이다. 한북정맥(漢北正脈)은 한강 물줄기의 북쪽에 있는 산줄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시작되어 서울의 주산(主山)인 백악(북악산)으로 연결된다.



그림3 대동여지도 : 백두산 부분이다. 산줄기를 이해함에 있어서 산경표와 대동여지도는 기초자료이다. 한반도의 모든 정기(精氣)는 백두산에서 비롯된다.



그림4 고또분지로의 이론에 따라 야쓰쇼에이가 그린 산맥도 : 대동여지도와는 달리 산줄기와 물줄기가 별개로 표현되고 있다. 산줄기와 물줄기가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형(地形)보다는 지질(地質)의 기준에 의해서 그려진 산맥도이다. 한반도를 병참기지(兵站基地)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그려진 산맥도 이기 때문에 물자의 조달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그림출처 조석필, 앞의 책p.13)



그림5 대동여지전도 : 대동여지전도에서의 산줄기와 물줄기는 서로 교차되는 경우가 없다. 즉, 산줄기는 물줄기를 넘을 수 없고, 물줄기는 산줄기를 넘을 수 없다.



그림6 산경표에 의한 산줄기 : 산경표상의 백두대간, 장백정간, 한북정맥을 비롯한 13정맥을 표현한 그림이다. 산줄기와 물줄기가 서로 교차되어 서로를 넘는 경우가 없다. 강이름을 기준으로 한북정맥이니, 한남정맥이니 하는 정맥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산줄기는 마치 인체의 혈관과 같이 백두산의 정기(精氣)를 한반도 전체에 골고루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3. 풍수지리학의 관점에서 서울, 의정부, 회룡사의 입지분석

3.1 서울의 풍수

서울의 풍수에 대해서는 관련서적과 연구논문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본 주제와 관련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서울의 입장에서 볼 때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은 한북정맥의 본줄기로서 백두산까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산줄기이다.

풍수에서는 소위 혈(穴)앞쪽으로 전개된 경관도 중요시하지만 더욱 중요시하는 것은 뒤를 받쳐주는 주산(主山)의 형세이다. 서울의 주산으로서 북악산의 주맥은 한북정맥에 속하는 산줄기이다. 즉 북악산은 백두산에서 한북정맥으로 이어진 산줄기로부터 생기를 공급 받고 있는 셈이다.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큰 줄기는 분수령(分水嶺)에 이르러 한북정맥의 가지를 생성한다. 산경표([山經表], 조선광문회간행)에 따르면 한북정맥은 분수령에서 천산(泉山), 천산에서 분이기(分二岐)하여, 장엄산(帳巖山), 장망산(獐望山), 장망산에서 분이기하여 율지산(栗枝山 : 栗枝上으로 되어있으나 오기 인 것으로 판단됨), 말응산(末應山), 백운산(白雲山), 망국산(望國山), 운악산(雲岳山), 주엽산(注葉山), 축석현(祝石峴)에서 반달모양의 천보산맥을 가로질러 샘내고개를 넘어 불곡산(佛谷山), 홍복산(弘福山)에서 울대고개를 넘어 도봉산(道峰山), 삼각산(三角山)에서 분이기하여 그중 가운데 것이 문수산(文殊山), 백악(白岳 : 현재 산이름이 북악산)에 이른다.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는 경복궁 뒤의 북악산과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상 모두가 북악산 본줄기에서 좌우로 뻗어나간 것들로서 근본은 하나다. 풍수에서는 이를 두고 본신용호(本身龍虎)라 칭하는데 일제강점기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이 파괴되었다.뿐 만 아니라 해방 후의 근대화의 물결에 의해서 여러 곳에 길이 나고 터널이 뚫리면서 주산과 청룡백호는 많은 상처를 받은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림7 서울의 주산 : 경복궁 뒤의 산을 주산(主山)이라하고 형국상으로는 사신사(四神砂)중 후현무(後玄武)에 해당하는 산이다. 즉 서울에 생기를 공급하는 주된 산줄기 이다.



그림8 대동여지도상의 한북정맥 : 대동여지도는 116개의 목판으로 구성되는데 전체를 조립했을 경우, 지도 크기가 7m x 3m이다. 이러한 대형의 지도가 116개의 목판으로 제작하여 하나의 지도로 결합되기 위해서는 대단히 정밀한 작업으로 이루어져야한다. 현대지도와의 비교를 위하여 축척을 계산해보면 대략 165, 000 : 1의 축척으로 되어있다.



그림9 대동여지도상의 한북정맥의 상징성 : 대동여지도상의 한북정맥만을 편집한 그림이다. 회암사, 샘내고개 일대를 경계로 임진강수계와 중랑천, 한강수계로 갈라진다. 한북정맥의 산줄기에 의해서 물줄기가 갈라지는 모습을 보여준자. 대동여지도는 정밀한 지도로서 뿐 만아니라 상징적 그림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한북정맥의 형태를 봉황으로 이해할 때 회암사의 위치는 봉황의 머리부분(눈알부분)에 해당된다. 봉황의 몸체의 일부로서 한양과 회암사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 회암사의 뒤쪽 망경대(望京臺)에 올라보면 남산과 관악산이 보인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한양과 회암사가 묘하게 서로 관련됨을 알 수 있다.



그림10 한북정맥의 흐름도 : 서울까지 이르는 한북정맥의 산줄기의 방향을 나타낸다.(현대지형도를 바탕으로 재작성함) 대동여지도와 비교해보면 산줄기의 연결상태가 거의 비슷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11 한북정맥의 손상 : 서울의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을 감싸는 많은 산들이 훼손 되었다. 후현무인 북악산에는 북악터널, 홍지문터널, 정릉터널, 백호인 인왕산에는 자하문터널, 사직터널 주작인 남산에는 남산 제1,2,3호 터널, 청룡인 낙산에는 택지조성으로 산림이 거의 훼손됨으로서 서울의 사신사(四神砂)는 상처투성이로 남아 있다. 풍수지리학의 측면에서 볼 때 최근의 낙산 살리기와 청계천 복원은 서울의 상처달래기에 많은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3.2 의정부(議政府)의 풍수

의정부의 풍수를 알아보기 전에 의정부라는 명칭이 사용된 유래부터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선 제3대 태종이 방번(芳善)과 방석(芳碩)을 살해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태조는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여 함흥(成興)으로 옮겼다. 이후 태종은 여러차례 사자(使者)를 보내어 용서를 빌었으나 태조는 사자를 감금, 살해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함흥(威興)의 사(使)”또는 함흥차사 라는 말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후 태조는 화가 누그러지는 듯하면서 태종 2년(1402) 12월에 지금의 의정부까지 돌아오게 되었다.

태종은 부왕을 맞으려고 천막을 치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러나 태조는 활의 명수이기 때문에 중신 하륜(河崙)은 부왕 태조가 반드시 태종을 해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천막에 큰 기둥을 많이 세웠다. 그 결과 태종은 순간적으로 기둥 뒤에 몸을 피하였기 때문에 다행히도 부왕의 화살을 맞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곧 잔치가 시작되자 태종은 ‘헌수(獻壽)’의 뜻으로 친히 부왕 태조에게 잔을 올려야만 하나, 이 또한 하륜의 지략으로 하륜 자신이 잔을 올렸다고 한다. 이리하여 태조는 결국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의정부지방에 장기간 머물렀다고 한다. 의정부 3정승을 포함한 각 대신(大臣)들은 한양보다도 지금의 의정부로 와서 정무(政務)를 의논하고 결재를 태조에게 받았기 때문에 의정부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의정부시청 홈페이지)

위의 내용에서 언급된 사실로서 태조 이성계가 의정부 근처에서 머물렀다면 과연 그곳이 어디일까? 아직은 불확실 주장이긴 하지만 태조 이성계가 당시 회암사(檜巖寺 : 경기도 양주군)에 장기간 머물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주목되는 것은 태종 2년(1402) 6월 150명을 보내어 회암사를 중수하고, 궁실을 지어 태조를 머물러 살게 했다는 기록...”(기전문화연구원, [회암사1], 2001, P.32.)이 있다는 것이다.

태조 이성계와 정무를 의논하기 위하여 의정부의 3정승을 포함한 각 대신들이 머물면서 의정부가 비롯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에 머물면서 의정부가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회암사와 의정부는 행정구역의 단위는 달리하고 있지만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회암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고 회암사의 입지요건에 대해서만 분석하도록 한다. 회암사는 지공선사(指空先師 : ? -1363), 나옹대사(懶翁大師 :1320-1376 ), 무학대사(無學大師 : 1327-1405)의 부도(浮屠)와 영정(影幀)이 모셔져 있고 고려말에 나옹선사에 의해서 크게 중창된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나옹선사가 중창한 사찰의 자세한 내용은 목은 이색(牧隱 李嗇 :1328-1396)의 천보산회암사수조기(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회암사 발굴 팀은 최근(1997-현재)의 발굴결과 그 기록과 현장이 거의 일치함을 확인해가고 있다.

회암사는 아주 특이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회암사 입지는 려말선초에 당시의 최고의 선종계 고승으로 알려져 있는 나옹과 무학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점에서 주목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회암사는 지형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월형국(半月形局)에 자리하고 있다. 풍수에서 반월형국은 보름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으므로 보름달보다도 더욱 길한 형국으로 이해되고 있다.(村山智順, [朝鮮의 風水], 崔吉城(역), 서울 : 민음사, 1990, p.622. 경주의 반월성에 얽힌 이야기로 석탈해가 왕이 되는 과정을 반월성의 반월형국과 연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형도를 가지고 3차원형태를 구현하면 마치 인공적으로 지형을 만든 것 같은 뚜렷한 반달모양이다. 이 반달모양은 천보산(天寶山)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하늘이 내려준 보물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동여지도를 재편집한 도면을 참조하면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 반월형의 천보산이다. 서울의 형국과 별개가 아님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무학대사의 부도탑 뒤로 산을 올라가면 망경대(望京臺 : 서울을 바라보는 곳)가 있는데 이곳에서 날씨가 좋으면 서울의 남산, 관악산을 볼 수 있다.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에 머물면서 이곳으로 올라 왔다면 서울을 조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림12 회암사지 뒷산에 있는 무학대사 부도 : 이곳에는 세 개의 부도가 있는데 무학대사의 부도, 나옹선사의 부도, 지공선사의 부도가 각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자리하고 있다.



그림13 회암사지 전경(남쪽이 위로) : 회암사지의 뒤에서 앞을 향하여 바라본 모습이다.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오른쪽 산이 사패산, 북한산이며, 왼쪽이 수락산이다. 사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정청(正廳)이라 불리운 곳이며 바로 동쪽(왼쪽)에 동방장(東方丈)으로 태조가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이다.



그림14 하늘에서 본 회암사지 전경(북쪽이 위로) : 회암사지 발굴팀 홈페이지(www.hoeamsa.co.kr)에서 인용



그림15 회암사지 복원도(자연과건축에서 작성) : 정청(正廳)의 위치는 제일 상단의 가운데(8단지의 W1과 E1사이)에 있는 마루로 구성된 방이다. 목은 이색의 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나옹선사의 중창당시 총262칸의 규모였다고 한다.



그림16 회암사지도(2만5천분지1의 지도일부) : 지형도상의 천보산맥(天寶山脈)은 반원형의 특이한 지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천보산맥의 우측 상단 동그라미 부분이 회암사이다.



그림17 3차원의 지형모델 : 수치지형도(전자지도)를 가지고 3차원으로 구현한 천보산맥의 모습이다. 동그라미 표시된 부분이 회암사이다.



그림18 회암사부분 형국도 : 천보산맥의 반달형국 안쪽에 회암사가 위치하고 있다. 의정부외곽우회노선(제3안)은 한북정맥 뿐 만 아니라 천보산맥도 손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9 현재의 회암사 : 회암사지 발굴현장의 우측 뒤로 쭉 올라가면 새로 조성된 회암사가 보인다. 대웅전 앞의 영성전(影聖殿)에는 지공, 나옹, 무학, 보우선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성전의 우측언덕으로 올라가면 지공, 나옹, 무학대사의 부도가 차례로 모셔져 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천보산맥의 끝자락으로 칠봉산(七峰山)이라 불리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망경대(望京臺)에 갈 수 있다.



그림20 망경대 쪽에서 : 망경대로 올라가는 도중에 현재의 회암사를 바라본 전경이다. 지붕이 크게 보이는 전각이 강당(요사채 겸용)이고, 숲에 가려 조금 지붕을 보여주는 전각이 대웅전이다.



그림21 망경대에서 바라보는 천보산맥 : 망경대에 올라가면 회암사의 좌측으로 반월형으로 크게 휘감고 있는 천보산맥이 확연히 보인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서울의 남산과 관악산이다. 좌측의 산이 수락산이며, 우측으로 보이는 산이 사패산, 북한산이다. 산자락 아래에 비닐하우스 뒤쪽이 회암사 발굴 현장이다.



그림22 망경대 : 날씨가 좋은날 망경대에 올라가면 서울의 남산과 관악산이 보인다. 가운데 희미하게 남산타워가 보인다. 천보산맥(회암사)과 한양(서울)이 서로 관계되는 또하나의 사례이다.

3.3 회룡사(回龍寺)의 풍수

회룡사는 의정부시 호원동 산 89번지에 있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 : 경기도 남양주시)에 속해있는 수행사찰이다. 회룡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이다. 회룡사의 창건년대는 문헌상으로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다. 회룡사는 통일신라 신문왕 1년(681)에 의상(義湘)에 의해 창건되어 한때 법성사(法性寺)로 불리어 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말 경순왕3년(930)에 동진(洞眞)국사가 재창하여 우여곡절 끝에 무학대사와의 인연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회룡사 안내현판)

우선 통일신라말에 도선대사의 제자인 동진국사와 연결되어 있고 무학대사와 관련성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회룡사의 형국이 범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있다. 회룡사는 울대고개를 넘어온 한북정맥의 기세가 서울의 북악산으로 가기 전에 잠깐 쉬면서 가지를 펼쳐 놓은 곳에 터잡기를 하였다.

회룡사 일대는 백제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으로 도읍하기 이전에 자리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곳이다.(安國承, “하북 위례성에 대한 고찰,”의정부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2001, P.53.)




그림23 회룡사의 형국사진 : 회룡사의 형국을 보여준다. 골짜기의 동그라미 부분이 회룡사이다. 회룡사 윗쪽으로 올라가면 무학대사, 김구선생과의 인연이 있다고 전해지는 석굴암이 있다.



그림24 회룡사 형국도와 사패산 터널구간 :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터널 계획안(제1안)은 서울로 들어오는 한북정맥의 산줄기를 손상시킨다는 측면 외에 회룡사의 형국을 구성하는 산줄기(陰), 물줄기(陽)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림25 형국도 : 주산의 용맥(龍脈)이 힘차게 내려와서 물 앞에서 생기(生氣)를 모으고 있으며, 좌청룡 우백호 또한 긴밀하고 단단하게 잘 에워싸고 있다. 회룡사를 감싸고 지나가는 물줄기는 굽이굽이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으며, 여러 번에 걸쳐 속계(俗界)와 성계(聖界)의 경계를 확실히 하면서 사찰에 이르기까지 속된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회룡사의 경우는 주변의 산과 함께 물줄기 또한 성스러운 사찰환경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4. 대안 노선별 검토

4.1 실시설계노선(제1안)

풍수지리학의 측면에서 실시설계안의 결함에 대해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치명적인 결함으로 한북정맥의 본줄기를 가로질러간다는 점이다. 한북정맥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북에서 남으로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 백두대간 다음 단계의 주요한 산줄기이다. 사패산 일대의 한북정맥은 서울에 생기를 공급해주는 연결선상에 있는 주된 산줄기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1안은 서울의 주된 생기(生氣) 공급선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꺼려지는 것이다.

둘째, 회룡사의 형국을 구성하는 백호, 주작의 산줄기와 회룡사 주산의 출발점이 되는 한북정맥과 사패산을 가로질러간다는 점이다. 터널로 인해서 회룡사에 생기를 공급하는 산줄기(陰의 조건)가 손상을 입게 된다.

셋째, 회룡사의 중요한 환경구성요소인 물줄기(陽의 조건)을 가로질러간다는 점이다. 즉, 회룡사의 입장에서는 음(陰)과 양(陽)의 조건이 모두 손상되는 조건에 처하게 됨으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임을 이해할 수 있다.

넷째, 4km에 가까운 터널을 설치함에 있어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시 홍지문터널사고(2003.6.6)나 대구 지하철사고처럼 밀폐된 공간에서의 위험한 상황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과 대비책이 요구된다. 비슷한 터널길이인 백두대간을 가로 지르는 죽령터널(4.6km)과는 달리 사패산터널은 수직 환기장치가 없이 모두 동력에 의한 강제배기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4.2 국립공원외곽 우회노선(제2안)

풍수지리학의 측면에서 보면 산의 외곽 면을 깎으면서 지나간다는 점에서 산줄기의 손상은 최소이나 국립공원내의 산림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제2안을 보면 외곽순환고속도로가 송추로 넘어가면서 울대고개에서 한북정맥과 교차하게 된다. 도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북정맥의 산줄기는 울대고개선을 따라 사패산으로 넘어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제2안은 울대고개 위를 지나가는 계획안으로서 제1안, 3안에 비해 한북정맥과 교차하는 지점에 심한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일부절개)는 장점이 있다. 제2안의 경우도 3개(송추1터널(160m), 2터널(280m), 3터널(280m))의 터널이 있다. 다만 1안, 3안과의 차이점은 한북정맥의 산줄기선을 관통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4.3 의정부외곽 우회노선(제3안)

도로의 길이가 가장 길어짐으로서 가장 넓은 지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첫째, 국립공원 바깥이긴 하지만 울대고개를 넘어오기 전의 한북정맥에 손상을 주는 대안이다.

둘째, 회암사의 입지근거가 되는 반달형국의 지형을 절단하고 지나간다는 점이다. 천보산을 훼손하는 것은 회암사의 형국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제1안과 비교할 때 3안의 경우는 한북정맥과 천보산맥를 더불어 손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 좋지 못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5. 종합평가

5.1 풍수지리학의 측면에서의 대안

풍수지리학의 측면에서 가장 좋은 안은 제2안(국립공원외곽우회노선)이다. 왜냐하면 한북정맥과 물줄기의 손상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제2안의 경우도 제시된 계획안의 경우 3곳의 터널(송추1,2,3)이 있고, 일부 절개구간도 있다. 하지만 한북정맥이 진행하는 산줄기의 중심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니므로 제1안과 3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손상으로 판단하였다.

‘산을 살아있는 용으로 본다.’
'산을 백두산에서 연결된 선형(線形)의 산줄기 개념으로 본다.’
위의 두가지 풍수지리학적 기초개념을 가지고 제1,2,3안을 평가해본다면 단연 제2안이 선택될 수 있다.(다음의 도면은 재검토위원회 박석성위원의 도면에서 인용함)



그림26 제1안(사패산터널구간) : 터널공사구간이 한북정맥의 산줄기 중심선을 가로질러 통과한다.



그림27 제2안(국립공원외곽노선) : 한북정맥의 산줄기중심인 울대고개 부분에서는 일부의 절개부분이 생기나 제1안 3안에 비해서는 경미함.



그림28 제3안(의정부외곽노선) : 송추2터널의 구간은 제1안보다도 한북정맥에 더 큰 손상을 준다. 북한산국립공원경계 바깥부분이긴 하지만 터널의 길이가 제1안보다 더 길게 설계되어 있다.



그림29 제3안(의정부외곽노선) : 제3안의 경우는 한북정맥을 더 심하게 손상시킬 뿐만아니라 천보터널구간에서는 회암사와 관련있는 천보산맥도 손상을 입힌다.

5.2 풍수적 조건이 전부일 수는 없다.

지금까지 도로의 건설이나 개발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풍수측면에서의 검토가 사전에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인정해야할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도로의 선형을 결정함에 있어 이러한 풍수적 고려사항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풍수는 다른 여러 분야처럼 하나의 고려사항으로 인정되어야하며, 너무 편향적인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로를 건설함에 있어서 풍수지리학적 조건 외에도 여러 가지 고려해야할 중요한 사항들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고 판단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의식이 관여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한북정맥의 산줄기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고 제대로 된 선형을 가진 도로를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조건들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5.3 풍수비보(風水裨補)

풍수에서는 약한 부분을 보강해주는 것을 비보(裨補)라고 하고, 너무 강한 부분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압승(壓勝) 또는 염승(厭勝)이라고 한다. 도로건설을 함에 있어서 어느 대안으로 정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비보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우선 산줄기의 손상을 최소로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한다. 그다음 피하지 못할 상황으로 터널이나 절개에 의한 산줄기의 훼손이 가해질 경우 발생될 생기(生氣)의 교란(攪亂)에 대한 비보나 압승의 대책이 강구되어야할 것이다. 이때 풍수측면의 비보의 목적은 손상에 대한 완전한 치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해진 부분에 대한 차선의 보완이며, 손상되어 약해진 부분에 탁한 기운이 들지 못하도록 하는 상처 보호의 차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풍수의 논리체계로 이해할 때 비보를 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생기의 교란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 :세종실록과 세조실록에서 산줄기 보호에 관한 말씀.(韓東煥,[朝鮮前期 漢陽禁山의 範圍와 機能에 關한 硏究],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학과 석사논문, 1992, pp.62-63.)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길, " ...... 우리 태조께서 개국하여 한양에 도읍을 정하시고 궁궐을 영건하시며 종묘를 세우심에 모두 지리를 쓰셨고, 건원릉(建元陵 : 태조의 왕릉)에 이르러서도 지리(地理)를 썼으니 이는 곧 우리나라는 지리(地理)의 학설(學說)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세종실록 권 61 세종 15년(1433) 7월 戊寅(27일))

병조에서 아뢰기를 “암석이라는 것은 산맥의 골절(骨節)이므로 다만 도성의 산등성이 내면에서만 벌석(伐石)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불가 합니다. 청컨대 도읍이 있는 주산(主山)의 내맥(來脈)은 함길도의 장백산에서 철령에 이르고 강원도 회양부의 풍곡에서 금성현의 마현과 주파현에 이르고, 낭천의 향현에서 경기의 가평현 화악산에 이르고, 양주의 오봉산에서 삼각산 보현봉과 백악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향림사에서 녹번현 세답암과 복점 연창위 농소에 이르니 모두 벌석하지 말도록 하소서”하니 (세조임금이) 그대로 따랐다.(세조실록 권 31 세조 9년(1463) 10월 丁未(22일))

후기 : 그동안 외곽순환고속도로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이제는 관통이냐, 우회냐의 문제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그 문제도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결정이 되던 그것으로 누기 이기고 진 게임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되던 제대로 된 도로를 만들어야한다. 터널로 관통이 되었을 경우 환경훼손의 우려 때문에 도로 안전상 꼭 있어야할 수직환기구시설(도로관련 환기시설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수직환기시설이 꼭 있어야할 안전시설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사패산터널과 조건이 비슷한 죽령터널의 경우는 이와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환경보호여론이 워낙 강하다고 해서 이의 논란을 우선 회피하기 위해서 꼭 있어야할 안전시설을 못하는 누를 범하지는 말자는 의미로 받아 들어주었으면 한다.)등이 생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홍지문터널에서의 사고(2003.6.6)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다. 홍지문 터널은 가장 최근에 한북정맥을 손상시킨 터널이라는 점에서 무게있는 의미를 가진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말이 있다. 반면에 “북악산의 바위가 무너졌는데 이를 단순한 산사태로 보지 않고 주산의 암석이 무너졌다하여 매우 기이한 일로 여긴다. 이것은 북악산에 풍수논리에서 주산이 갖는 의미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한동환의 앞의 책 p.63)”
세 개의 대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땅에 대해 느낄 시간이 사실상 부족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두 번에 걸쳐 사패산 일대를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이 결정을 함에 있어 땅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하고 세종대왕과 무학대사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신다면 어떤 결정을 하셨을까? (끝)'
출처 : 한국참풍수지리학회
글쓴이 : 진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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