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면 안되는 참담함(펌)

(펌)종북,좌파,빨갱이로 몰려 죽음을 강요당한......

김 영철 2013. 1. 21. 21:02


'수원, 인천, 시흥, 평택, 여주, 이천, 안성, 음성, 진천, 청원, 보은, 옥천, 영동, 괴산, 서산, 예산, 당진, 공주, 부여, 대전, 익산, 군산, 정읍, 나주, 진도, 해남, 여수, 문경, 예천, 칠곡, 울진, 영덕, 영천, 포항, 경주, 경산, 군위, 대구, 청도, 상주, 김천, 밀양, 양산, 울산, 부산, 김해, 함안, 마산, 통영, 거제, 진주, 사천, 하동, 남해, 거창, 함양, 제주'

위에 열거된 지명은 한국전쟁이 나자마자 정부가 '요시찰인'검속령을 내려,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사람을 학살했던 장소들입니다. 보도연맹학살로 전국에서 15~20만 명의 양민이 학살된 것으로 조사됐는데, 보도연맹은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보도연맹강령과 조직표.


오제도,선우종원,장재갑 등 사상검사에 의해 주도된 '국민보도연맹'은 사실상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이 주도한 정부단체였습니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제정된 국가보안법의 시행에 따라 1949년 말에는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는데, 이 숫자를 차지하는 사람 대부분은 공무원 실적 올리기에 동원된 평범한 양민들이었습니다. 

정부가 주도했던 보도연맹에 이름만 올려놓았던 양민은 전쟁이 나면서 이승만이 단지 '조선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협조할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학살당했던 것입니다. 

▲해방후부터 백범 김구 암살까지의 정치 상황. 출처:경향신문


한국에서 반공이라는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해방 후 나왔던 정치적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우후죽순처럼 정당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당시 '건준'(건국준비위원회)이 부상하면서 제일 두려움을 느낀 계층이 친일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민당'으로 몰려들었고,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그와 손을 잡게 됩니다. 

김구와 이승만은 단독정부안을 둘러싸고 대립을 벌였는데, 당시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백범 김구가 연립정부수립을 위해 김일성과 협상을 벌인 일을 가지고 반공이데올로기로 공격했습니다. 일제잔재와 친일파 전면청산을 내세웠던 김구와 반민특위 활동에 위협을 느낀 친일세력은 김구의 '연립정부안'을 '친공'으로 몰아세웠고, 이는 지금껏 반공의 논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반공'은 진정한 공산주의와의 투쟁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친일파의 생존 전략의 하나였고,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는 상대방의 주장을 막기 위한 아주 효율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단지 이제는 '반공'이라는 단어보다 '종북'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차이일 뿐입니다. 

흔히 종북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전라도가 빨갱이들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한국 현대사를 보면 오히려 대구가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던 지역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사상이라는 것도 시대의 흐름에 불과하건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실체가 없는 '종북'타령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아이엠피터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