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영철 2019. 12. 9. 11:14

울 엄마 바지는 몸뻬

헌 무명치마 하나를 발려서 만든

그 몸뻬에서 빼내지 못한 몸이

아직 그 몸뻬 속에 남아 있다

하루를 더 산다고 뭐 달라질 게 있남

이 몸뻬를 벗는 날 이 행복인 거여

 

사십여리 머언 길 이네미

친정 엄마가 생각이 나고

큰 오라버니며 언니도 동생도

하얗게 가려버린 안개속에서

손짓하며 부를 때

주름진 눈가를 어지럽히던

눈물 찍어낼 옷고름은 없어도

주머니도 구녕도 없는 몸뻬 속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속주머니 하나 숨어있다

 

고무줄 넣은 허리춤을 뒤져

까치밥 몇 알을 꺼낼 때

마저 채워두지 못해 안타까운

설움은 매달려 나오지만

비어있는 몸뻬 속 주머니 에는

또 채워야 한다는 기다림은 남아 있다

 

몸 을 빼내어야 할 몸뻬 속에서

서른 넘은 손주 걱정이 일고

이제는 잊을 때도 됨직한

환 진갑 넘은 새끼들 흰머릴 만져 보려

오늘도 몸뻬는 가문 밭에 쪼그려 앉아

밭틀 너머 당골 언덕배기 말없이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