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에서
추석 연휴에 항저우 아시안 게임 TV중계를 본다.
오랜만에 국제경기에 나온 북한 선수들의 웃음기 잃고
윤기없는 얼굴에서 가슴이 저려오는데, 남.북한 탁구며 농구, 사격등의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의 일방적인 남한선수만의 선전을 악을 써가며
침 을 튀기는 소리를 듣는 콧등은 아려오고,
60년대 나 어렸을 적 그 시절의 피부와 같이 햇볕에 그을려
검어지고 거칠어진 얼굴, 그리 땀을 흘려도 마른 황토에 빗방울 몆개
지나간 듯이 물기없이 그늘이 진 남정네, 그들보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한참 꽃 같이 피어나야 할 나이때에 여자선수들의 주근깨 박히고
누렇게 뜬 피부며 메마르고 윤기없는 얼굴을 보는 내내 눈시울이 젖어온다.
남,북한 맞 대결 경기를 보는 동안 그 누구를 응원도 못하고
북한선수들의 실수와 득점 실패에 애가 타,
아! 저기서 실수를!,
조금만 더 힘을 내!,
괜찮아 너희도 할 수 있어!,
주눅들지 말고!,
반칙으로라도 상대의 흐름을 끊어!,
아! 몸집이 작아 힘에서 밀리네!,
안타깝고 애처로운 응원으로 추석연휴의 빈 사무실을 채우며
속절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축 늘어진 어깨를 추스르며 돌아서는 선수들과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응원하는 이 하나 없는 관중석을 바라볼 일 도 없이,
애 써 감추는 외로움과 서러움만이 발길에 걷어 채이는 이국땅 항저우에서,
허여멀겋게 기름기 흐르는 남녘의 동포를 스치듯이 바라보는 북녘 아이들의 부러운 듯,
부끄러운 듯, 바라보기를 피하며,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안스러운 몸짓에서
나 는 그만 목 이 메인다.
남,북한 경기가 아니면 북한선수의 경기를 볼 수 없는 이 나라의 현실 속에서,
북한선수를 응원하는 날 보고 무어라 할지는 불 보듯 뻔 한 노릇이지만,
아픈 손가락 같은 남정네 들의 짧은 머리와, 가꾸지 못한 머릿결은 단발을 하고
질끈 동여맨 여자선수들, 유행에서 한참은 뒤처진 것 같은 단복과 유니폼에서
묻어나는 고단함을 외면하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무었이 존재하는 것인가.
한가위 차림상의 기름진 음식에 거북해진 속을 달래는 하루,
그 들 보기 부끄러운 가슴 한켠을, 천정속에서 다름박질 하는 고양이며 쥐새끼의 비명이,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괴성과 함께 사정없이 나를 짓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