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숭미 귀태정권의 발악

바끄네 내각

김 영철 2013. 2. 6. 11:51


궁물총리 최태민

수첩실장 서향희

주먹실장 박지만

휴대폰 고리에 ‘박정희·육영수’ 사진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가 13일 오후 서울 노량진의 자택을 나서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다. 

휴대전화 고리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달려 있다. 

육법당(陸法黨)사건

1994년 1월, 서울대 법대 동창회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동창들의 학창시절 회고와 졸업 후 인생경험 등을 담아 수상록(隨想錄)을 펴냈다. 각 기수별로 10명씩 필자를 선정, 모두 1백76명의 동문들이 쓴 글을 2권의 책으로 묶었다. 제1권은 서울대 건학이념인 '진리는 나의 빛', 제2권은 한국전쟁 중 피난지 부산 가(假)교사에 표어로 내걸었던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를 각각 제목으로 정했다. 

이 책에는 법조계는 물론 정·관계, 경제계, 언론계, 학계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법대 동문들의 자화상이 소개됐다. 관계 인사로는 현승종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시윤 감사원장, 김석휘 전 검찰총장, 금진호 전 상공장관, 이인제 전 노동장관, 손재식 전 통일원장관, 이규호 전 건설장관, 이선중 전 법무장관, 전·현직 국회의원으로는 이대순 김용태 곽정출 장석화 박상천 의원(직함은 당시 기준)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당시 언론은 이 책에 실린 글 한 편에 주목했다. 2권에 실린 법대 13회 졸업생인 한동우 동양투자금융 사장(현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쓴 '육법당(陸法黨) 사건'이라는 글이었다. 한 사장은 이 글에서 "군사독재를 뒷받침 해준 머리와 손발은 대부분 서울법대 출신이었던 반면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 법대인은 드물었다"며 법대 출신들이 정통성이 없는 권력과 야합해 사회와 역사를 어지럽혔다고 일갈했다.  

한 사장은 또 "부모들이 자식들을 특권층에 입적시키기 위해 법대를 지망하게 하고 자식들도 이에 동조해 법대를 선택하는 등 법대가 출세의 등용문으로 변했다"며 "사정(司正) 한파로 줄줄이 묶여가는 사람 중에 법대인이 많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사장은 이어 "진정 법대인의 일그러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육법당 사건'을 '기소중지' 하지 말고 정의의 종을 두드리며 끝까지 추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3공, 5공 시절 정·관계로 진출한 인사들이 버젓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때였지만 한 사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한 셈이다. 외부인사도 아닌 법대 출신이 동문들을 향해 이같은 '쓴소리'를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은 육사 출신 정치군인들과 야합해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을 떠받혔다. 당시 세간에서는 전두환이 창당한 민주정의당(민정당)을 '육법당(陸法黨)'이라고 불렀다.  

[풍경 2] '국방위 회식사건'  

때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3월21일 초저녁 서울의 한 요정. 당시 잘나가던 고위 장성들과 현역 국회의원들이 술자리에서 난투극을 벌였다. 이 사건은 당시 박희도 육참총장(육사 12기) 등 육군 수뇌부 8명과 이세기 민정당, 김동영 신민당, 김용채 국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10여 명이 중구 회현동 요정 '회림'에서 양주파티를 벌이던 중에 일어났다. 이를 두고 흔히 '국방위 회식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날 군부에서 참석한 인사는 박 육참총장을 비롯해 5공 초기 현역으로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 정동호 참모차장(중장), TK 출신의 이대희 인사참모부장(소장), 12·12 쿠데타 때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한 구창회 육참총장 비서실장(준장) 등 모두 '하나회' 핵심멤버들이었다. 국회 국방위에선 공군소장 출신의 천영성 위원장, 남재희 민정당 의원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이들은 평소 국방위에서 낯을 익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 '국방위 회식사건'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1993.4.22)

이들에 이어 저녁 7시30분경 김동영 신민당 원내총무가 도착했다. 김 총무는 들어오면서 "힘 있는 거물들은 안 오고 똥별들만 먼저 모였구먼…" 하고 농반진반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그는 민정당 이세가 원내총무가 안보이자 "여당 총무는 안 오기로 했나. 이세기를 불러와"라고 소리쳤다. 비록 사석이긴 하나 '낯선 군인'들 사이에 끼어 있자니 김 총무로서는 카운터파트인  이 총무를 찾은 건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나 이세기 민정당 원내총무가 도착했다. 그러나 정동호 차장이 이 총무를 향해 "이새끼.. 총무가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 그러니까 야당이 우릴 보고 똥별이라고 하지 않나"라며 쏘아댔다. 이어 동석했던 다른 군인들은 이 총무를 김동영 총무 앞으로 끌고 가 "정치를 잘해야 바깥에서도 안 떠들 거 아닌가"라고 훈계조로 말했다. 비록 군인정권 시대라고 하나 집권여당 원내총무에게 과도한 행동이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남재희 민정당 의원이 화를 참지 못해 맞은편 벽을 향해 유리컵 2개를 던졌다. 그런데 벽에 맞고 깨진 유리컵 파편에 이대희 부장 왼쪽 눈덩이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피를 본 이 소장은 남 의원 얼굴에 발길질을 날렸고, 남 의원은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이후 술자리는 순식간에 난투장으로 변했다. 이 사건 뒤 정동호 차장은 전역했고, 이대희 부장은 전방으로 전출됐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회식자리에서 물의를 빚은 군부 인사들은 전부 승승장구했다. 박 총장은 예편 뒤 별다른 공직에 나서지 않았으나 정동호 차장은 민정당과 민자당 공천으로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2000년엔 새천년민주당 의령·함안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또 이대희 부장은 예편 후 병무청장을 지냈으며, 구창회 비서실장은 당시 준장에서 대장까지 승승장구하다 93년 봄 3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했다. 모두 육사 출신인 이들은 전두환 정권의 한 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