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허수아비에 꿈 25

더불어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 / 덕보 머지않은 날 아침이 누리 이 바다에 새벽 홰를 쳐 길게 우는수탉의 우렁찬 소리어디선가 들려오지 않겠으랴 끊어진 백두대간의 혈 을 모으고무너진 다리를 일으켜 세워중원을 향한 거친 꿈 을 안고대륙을 휘몰아 달릴 그 날이 오면 진달래는 이 산하를 붉게 물들이고푸른 강물은 대지를 적시며 바다로 가고잡목을 베어 쓸어낸 자리에는붉고 푸른 꽃 다투어 피어나지 않으랴 마는 세상이 열린 이래올곧게 지켜왔던 우리의 신념이민중의 피 로 기록한 이 땅의 역사에귀태에 의해 하늘을 거역하던 때 는 없었거늘 오늘 그 이름으로새로 이루어야 할 하나의 조국앞에강물을 거슬러 이 산하에 올라 대 조선의 찬란한 뜻 을소리쳐 부르게 하리라

전봉준장군 단소에 바치는 시

-전봉준장군 단소에 올리는 시- ~새야 새야 팔왕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간다~ 엄마품에서 떨어져 젖투정 잠투정 부리다할아버지 품에서 불아불아 소리에 잠이 들고아궁이 앞 부지깽이 춤추면 엉덩이가 아파키쓰고 바가지 들고 소금 얻으러 가던 어린 날할머니 품 에서 처음 듣고 배웠던 노래였습니다. 가보세 가보세을미적 을미적병신이면 못간다 하시던 그때로부터두갑자 하고도 아홉해가 지났습니다. 우금치 고갯마루에 서시어자손만대 잘사는 세상을 만드시려고썩어 문드러져 버린 나라왜놈의 세상이 되어버린 산하에새살이 돋아나고 손자가 주인인그런 조국을 물려 주시려다 숨 을 거두신 곳 곰티에서 검상말로곰내에서 하고개로 이어지는 능마루그 둔덕을 끝내 못 넘어 가시고무네미 고개아래 후미진 곳왜놈의 총..

해인재

앞 개울 이름은 한 내그 건너 나즈막한 반월산개울둑에 지은 낡고 허름한 방 한칸 어렵게 얻어 같잖게 붙인 이름이라듣고서도 금새 잊고마는 내가 잠시 머무는 자리해인재(海印齋)​여름에는 따듯하고겨울이면 시원한 사무실에 누워젓대 가락으로 혼 을 달래며초막(草幕)의 문틀에 거미줄을 쳐초려(焦慮)의 출입을 막아 놓고​선 팔십을 닦아후 팔십을 준비 하려는지되도 않을 글 귀를 붙들고 왼 씨름을 한다​곧은낚시 초리대로 잉어를 희롱하고여울진 세상을 향해 곤댓짓을 하며사십리 너머 아치산에 돌 무더기를 쌓아 사마(四魔)씨를 잡으려 팔진을 치고막걸리를 따뤄놓고 유인을 한다​등지지 못 한 세상이나 한번 뒤집어 보려고....​​​​​​

불 멍

불 집을 본다가리의 불꽃에소나무 관솔이 타고참나무 등걸에 불 이 붙어짙은 분홍빛으로 이글 거리는그 불집이 내는 엇모리 가락에불 꽃은 춤을 추고 하늘로 오르는 불 길을 따라가다불 꽃을 헤치고그 속에 들어앉아 본다 꺾이고 끊긴 곳에서 피어나는 새하얀 연기넋 없이 바라보는 얼굴은 익어매서운 연기로 흐르는 눈물 속에멍 하니 초점을 잃어가는 눈 길 그 길을 비추는 불 속 에는연분홍 불 꽃 속엔 처연한 그리움이새파랗게 피우다 시든 메마른 꿈 이노랗게 피어 오르는 아릿한 기억이   자줒빛으로 사를 때는 가버린 사랑이 저 뜨거운 잉걸이 사그라들 때면하릴없는 꿈 도꿈같은 사랑도속절없는 그리움 속에서연기가 되어 피어 오르다가뭇없이 스러져 가는.....

개 꿈

오늘같이 추운 밤 찬 이불을 덮어 잠 을 청하면시린 발치를 따라 저 멀리서내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 어젯밤에도 왔었고그저께 밤 에도 다녀간 듯 한 눈 을 뜨면 도무지 알수없는 사람이눈 을 감으면 낯 이 익어 보이고눈 뜨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눈 을 감으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 추억도 아닌 알 듯도 말 듯도 한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흑백영화 같이 그렇게 내 게 찾아오는 날이면가뭇하니 스러져가는 기억을 쫒아 헤메이고그러다 돌아 누우면 하나 남김없이 지워지곤 해 이불깃에 눈물자국 하나만 남기고

술 익는 집

얹그제 돌지나 이제 네 살예순셋인가 넷인가 내 나이가 지금 쯤 에서굳이 욕심을 부린다면갖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허름하더라도 깨끗한 술집이여 요즘같은 겨울이면짧다른 장작 대여섯 개피 들어가생철 연통이 발갛게 익어가는 난로에막걸리도 있고소주도 팔고양주도 먹을수 있고칵테일도 만들어 파는 집그러나 안주는 없는 술집을 짜네 싱겁네 덜 익었네골았어 상했어 초 가 됐어듣기 싫고꼴보기 싫어 안주는 안 팔려네시원한 냉수던지뜨끈한 물이던지술 한잔에 물한잔 마시면서안주발에 술맛을 모르는 그런 술집이 아닌 술한잔에 시 한수 읊을 줄 아는 이라면달라는대로 술을 퍼주고어느 낯선 사람에 시 일망정여린 시구를 붙잡고 제 설움에 겨워 울 줄 아는 이 라면술 값 같은 건 받지 않고 초등 동무가 찾아준다면더더욱 반가울 테니 밤을 새울 것..

이국 땅

누가 내게 묻기를바다 건너 어느 나라에 가본적 있느냐기에나는 이렇게 대답하였소내 나라 내 땅도 못다 본 놈이남 의 나라엘 가서 무엇을 더 보려느냐고 외국 다녀온 얘기하는 그 에게나 는 이렇게 말 하오리나 살아 육십여 년남한 땅 위를 수박 겉핥기 나마 제주를 돌아 보고울릉을 밟아 보고독도를 다섯번 찾아 바위를 기어올라 보았소내 나라 내 땅이 좋아아직도 못 밟아본 그림 같은 곳 이 많은데굳이 외국까지 나가서 볼게 뭐 있겠느냐고 나는 남 의 나라에는 가지 않겠소금강산을 내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이별 눈물 더 한 대동강에 발 적셔보고칠보산을 휘돌아 정주에 들러 술한병 들고 영봉 백두에 올라 두발을 딛고천지의 맑고 푸른물을 내 손으로 떠 먹어보기 전 에는나 는 다른 나라에는 가지 않겠소 일제의 압제에서 아직도 해방..

봄 꿈

가만히 불러보기만 해도시린손을 녹이려는 입김속에봄!붉은피 끓는 청춘의 노래에도반백을 곱게 빗어넘긴 머릿결에도봄!꿈 을 기다리는 봄 이 올레라 버들강아지 눈 녹인 시냇물소리달래 냉이 씀바귀 향기를 쫒아제비꽃 노루귀에 앉은 벌 나비 날개짓에봄!노고지리 손사래에 쫒겨 겨울은 갈레라  잊혀지는 기억속에 남풍이 건듯불어 가슴 두근대고 괜시리 얼굴 붉어지는봄!꿈 을 그려볼수 있는 봄 은 몰래할 사랑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리니

을미(乙未)장마

지붕두드리는 요란스런 빗소리에 새벽꿈이 설었는데들창너머 청성산이 희뿌연빗속에 그림이 듯 있구나설은꿈을 씻으려 물구경 나선 반월교 아래에는호병골 개울물은 검누른 빛깔복장골 도랑물은 황톳빛 물살한내천을 만나 반가운듯 휘돌아 들며 소용돌이 치고황톳물길에 실려 떠가는 나뭇등걸 하나 자맥질을한다 억새,여뀌,물고마니 뿌리채 뽑혀 떠가고지푸래기 나무뿌리 뒤엉키어 흐르는데급하게 여울지며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곳 에서 검누른 용 한마리 불끈 날아 오를것같다 수쳇구녕에서 꼼지락이던 올챙이도 전봇대에 묻은 개오줌도 지난밤 술먹고 토해논 콩나물 쪼가리며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막걸리 통길가던 운전수가 뽑아던진 콧털이며 아줌마가 흘려버린 휴지쪼가리흙내음 물비린내에 찌든향수 거두어 개울섶 갈대잎을 휩쓸며 떠내려간다 내리는 비가 술 이..

청전이상범의 산수화에부쳐

먹이를 물어오는 소리개 같이산속 깊은곳에 기다리고 있을 아낙곱게 키워야 할 어린것들을 위해지게에 얹은 소쿠리를 다 못채우고가파른 고개를 넘고외나무 다리를 건너먹이고 지키고 입혀줘야할 덫 에 치인 길 매화는 곱게도 피었건만눈 녹은 시냇물은 봄 을 노래하며 흐르고오두막을 지키어 섯는 소나무엔 송화가 피고새순돋는 풀섶에는 개구리 뛰어나고산 아래 언덕위에 있는 오막살이는 우리들에 집 지워진 등짐의 무게에 숨 은 가쁜데요앞 모퉁이 돌아서 오르면 집 이 있으리라늘인목을 들어 재어보는 산길에는봄 내음은 코끝을 간지럽히고꽃향기에 취한 나비는 비틀비틀 날고 있어라

수석(壽石)

들고 나는 물결 그 손길로 다듬어스쳐지나간 인연이며부대끼어 멀어진 이웃그 하세월을 지나  내리는 빗발에 얼굴을 씻고지나는 바람결에 이슬말리며서리맞아 언 모서리 떨어지고연약한 오금 습진 사타구니는 눈보라에 아프게 파여 둥근듯이 모난듯이드러난 속살에 비처나는 살빛은푸른산에 붉은꽃을 피우고검은살에 새하얀 꽃 을 새기며글 인듯이 그림인 듯나 인듯이너 이듯이 태어날때 새겨진 문신을 지우려내손으로 다듬을수 없는 몸 을모두 내 맏기어 두고도억만년을 지나온 세월에 익은굳세고도 단단한 의지로모진 풍파에 몸 을 깍이우며 맞선것은 정녕 닳아서 흔적없이 사라지기 전에나의 손길에 보듬기어 보기 위하여서 라고

나으 시

바윗틈에 굽은 소나무의 송진 내마른 개울가 붉은 여뀌의 향기어스름에 감춘 허수아비의 꿈남 부끄러운 걸 글자로 옹그려 놓고다만 나 혼자 맡아보고몰래 숨어서 꺼내보고미친이 같이 웃기도 하고선잠깬 아이처럼 말 못하고 울어보는 꽃잎처럼 흩어진 별리에 사연부서지고 깨어진 청운의 꿈이며아직도 못다한 첫사랑의 고백을여기에 감추어 놓고 구름으로 표시를 해 두면 빗방울이 흠뻑 젖어보고바람은 낱장을 넘겨가며 들춰보고꽃잎은 떨어져 보고햇볕이 바래어 질때까지 들여다 보고이슬도 내려 보고달빛은 토끼그림자 비춰 보고먼지가 앉아 보고좀이 쏠아도 볼테니나 는 행복 하여라 그러다 그러다가가난한 이 궐련 말아피울 종이가 되어연기로도 피워 본다며는님 에 가슴속에 깊이깊이 새기고하늘로 올라 눈 되어 내려난들에 구렁에도 하얗게 피었다가가뭇없..

내곡리에서

바윗덩이 부수는 기계의 굉음깨어지는 돌덩이 자즈러지는 소리바퀴하나가 내키보다 큰 페이로다의 폭음자욱한 흙먼지일어 숨쉬기힘든 공장새벽부터 움직이는 일은늦은저녁 밤시간까지 멎을줄을 모른다쇳덩어리 냉기는 면장갑을뚫고 손등까지 얼어눌어붙은 한뎃바닥은 얼어붙어 미끄럽고사다리로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곳어둠이 찾아들면 손길로낮에 익혀둔기억으로 발걸음을 옮기며오늘의 무사함을 빌고 또 빌어보는예순을 바라보는 늙은 노동자평생을 흙먼지 굉음속에쇠 를 녹여 붙이고 흙덩이 치워가며이어붙인 삶 에 녹이 슬어서도 외양간 마소같이 시키면 일 하고 기계 세우듯이 생각나면 쉬라는더 이상 할수도 발붙일곳도 없는 노동법은 별나라 얘기인노동 교화소 그래 이것이 삶 을 이어가는 것이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할아버지 아버지남의 땅 소작농으로 사..

노동의 새벽

겨울비가 차갑게 내리는 새벽밝을것 같지 않던 하늘 먼동이 트고가시지않은 그리움에 젖던 꿈마져 진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빗방울 같이삶 의 무게에 흔들리고바람에 휘둘리다 힘에부처 떨어질때흩어진 자리에는 흔적조차 없을것을 꾸었던 꿈 도이루려던 명예도바라던 사랑도얻으려던 부귀도 모두다 내려놓은노동자로 지나온 길 위에서남은것마저 노동뿐인 하루가 고통을 이고 지고또 희뿌옇게 밝아온다

벗 없으면 술 도

동무의 연 으로 코흘릴때 만나서 놀고서로가 바쁘게살던 시절은 잠시 떨어져 지내다가쉰줄이 넘어선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밤새워 술마시는  하늘은 내맘같이 쟂빛 이지만너와 나 우리 둘 가슴은 소나기 한바탕 지나고  맑은 우물에 꽂힌다는 무지개같이샘 솟는 술잔에 비치는 우리들 처럼 그 고마움에 콧등이 시큰하고그 마음씀이 미안하여 먼산 바래기를 하는 날 때부터 동무죽을때까지아니 죽어서라도옆 에 두고싶은 인연 옷깃을 스치는 만남도 몆겁의 얼키고 설킨 인연이라고부부연은 전생에 웬수의 연 이라  그 보다 더한 우리의 연 은 어떤끈으로 이어졌을까이밤도 술잔을 마주하고 그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백마고지

서른두살 젖 빛 장군이고지탈환 재촉을 하여수많은 부하를 제물로 내어주고 시커먼 이름만 얻은 백마사단장  밤낮없이 빼앗고빼앗기기를 수십 번말 잔등 위에는 전우의 시체가 쌓이고적들의 흐르는 피가 산하를 적시던 날 궁예의태봉의 옛 도성 철원야트막한 산 그 등어리에는백마의 피 울음이 포성에 찢겨 흩어졌어라  이등중사일등병하사가 쓰러져간 능선의 하늘가엔태극기 사단기만 흐느끼듯 나부끼고 너희들의 욕망에 목숨을 내어준백마고지에 흩어진 님들의 서러운 넋 적도 아군도 함께 묻히어그 스러진 영혼들이 독수리 무리가 되어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