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글] 윤창중 관련
1. 윤대변 등 한국 사절단을 돕던 한국대사관 인턴 재미교포 여대생 21살의
C양을 꼬드껴
밤에 사절단이 묵는 워싱턴 숙소 호텔이 아닌 조금 떨어진 다른 호텔로 둘이
서만 가서
새벽까지 한잔함.
2. 다른 호텔에 방을 빌려서 함께 섹스를 한 것인지는 아직 파악이 안됨.
다만 미국교포 최대 여성 포탈인 Missy USA에는 성폭행 당했다고 도와달
라는 글이 올라옴.
3. MISSY USA 주장 글에 의하면 심한 욕설과 함께 성폭행당했다고 함.
4. C양이 워싱턴 경찰에 신고하자마자 윤창중 외교관 여권이 아닌 외교사절
비자를
내보이자 경찰이 추후 소환하겠다고 호텔에 머물고 있으라 통보 후 한국대
사관에
연락하여서 윤창중을 체포해야하니 신변확보 동의를 구함.
5. 그 사이 윤창중은 숙소 호텔로 가지 않고
곧바로 워싱턴 공항으로 엘로우캡을 타고서 인천공항에 가는 가장 빠른 비
행기를
공항에서 직접 발권하고 한국으로 출행랑 침.??
윤창중 묵는 호텔엔 윤창중이 가져간 옷가지 면도기 등 모든 짐을 그대로 놓
고 도망침.
6. 서울에 오자마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가벼운 성추행 혐의로 억울하게 미
국경찰
신고 받았으니 일단 사표를 수리해달라 요청하고 민정수석실엔 대외적으로
"자진 사퇴"로 발표해달라
주문
이번 방미의 최대 性과
들어나 봤나.....어우동 외교.
외신에서 박근혜씨보다 더욱 유며해진 윤창중
그대의 충실한 性본능 때문에
대한민국은 국격은 걸래가 되었다.
출처 : 오늘의 유머 |
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란게 이렇게 쪽팔린적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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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품위 손상' 윤창중 대변인 경질 9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수행중이던 윤창중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기간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 배석한 모습. | |
ⓒ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성추행 의혹으로 전격 경질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서면서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7일 밤(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이 현지에서 채용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을 성추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해당 여성의 신고를 받은 워싱턴DC 경찰은 윤 전 대변인의 성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워싱턴DC 경찰의 사건 보고서와 피해 여성의 진술, 미주한인 온라인커뮤니티에 퍼져 있는 주장, 청와대에 밝힌 윤 대변인의 해명 등을 모아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이하 현지시각).
박 대통령 숙소 코 앞에서....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지난 5월 7일 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워싱턴DC 숙소 인근 호텔 바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파견된 20대의 인턴 여직원과 술을 마셨다. 인턴 여직원은 미국 시민권자이며,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행사를 위해 채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술을 마신 호텔은 윤 전 대변인과 청와대 기자단이 묵었던 호텔에서 차량으로 약 10~15분 가량 떨어진 곳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영빈관)에서는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은 당시 인턴 여직원과 술을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둘만 마신 게 아니라 운전기사도 함께 마셨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사건은 이날 오후 9시 30분경 발생했다. 호텔 바를 나온 윤 전 대변인이 여직원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술을 한 잔 더 마셨고, 그 과정에서 윤 전 대변인이 몸을 더듬는 등 1차 성추행을 했다는 게 여직원의 주장이다.
여직원은 경찰에 신고 당시 윤 전 대변인이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고 진술했다. 이 여직원에 따르면, 욕설을 동반한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은 30여 분 동안 진행됐고, 참다못해 방을 뛰쳐나간 것은 이날 오후 10시였다고 한다.
현지 취재진에 따르면 여직원은 곧바로 자기 방으로 돌아갔지만, 윤 전 대변인은 다음날(8일) 새벽 5시경 다시 이 여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여직원이 거부하자, 윤 전 대변인이 욕설을 퍼부었고, 어쩔 수 없이 윤 전 대변인의 방에 갔을 때, 윤 전 대변인은 알몸 상태였다는 게 이 여직원의 주장이다. 여직원은 다시 거세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건 윤 전 대변인의 욕설과 폭언이었다고 한다.
윤창중 "속옷 차림은 샤워하고 나와서... 추행 없었다"
반면 윤 전 대변인이 귀국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측에 밝힌 해명에 따르면, 여직원이 자신의 호텔 방에 들어왔을 때 속옷 차림으로 있었던 것은 샤워를 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고 항변했다. 윤 전 대변인은 또 "수행하는 여성 인턴이 자료를 갖다 주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호텔 키를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은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여직원과) 술을 마신 건 맞지만 추행이라는 행동까지는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한 욕설이니 폭언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여직원은 성추행을 당한 직후인 8일 오전 워싱턴DC 경찰에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고 한다(그러나 경찰 조서에는 사건 신고가 이날 낮 12시 30분경 전화로 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여직원이 윤 전 대변인을 성추행 혐의로 경찰서에 신고할 당시, 박 대통령은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하고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주미 한국대사관에 그 사실을 통보하고, 윤 전 대변인에 대한 신원 확보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조사를 마친 경찰은 윤 전 대변인을 조사하기 위해 이날 오전 호텔로 찾아왔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기 위해 온 외교사절단이라는 점을 들어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경찰은 윤 전 대변인에게 호텔에 머물고 있으라고 통보한 뒤 일단 풀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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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내 한인 생활정보 사이트인 '미시USA'(missyusa.com)에 9일 오전 6시경(현지시각) 올라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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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행 없었다'더니... 짐도 안 챙기고 급히 귀국, 줄행랑?
경찰이 돌아가자, 윤 전 대변인은 급히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기자단과 함께 머물렀던 숙소 내에 있던 자신의 짐도 챙기지 않은 상태였고,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제공하는 차량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의 신용카드로 400여만 원에 달하는 대한항공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직접 발권, 오후 1시 30분 워싱턴DC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한국시간 9일 오후 4시 5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런 사실이 처음 한인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일 오전 6시 8분경이다. 미국 내 한인 생활정보 사이트인 '미시USA'(missyusa.com)에 '이번 박근혜 대통령 워싱턴 방문 중 대변인이 성폭행을 했다고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쓴 사람은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대사관 인턴을 성폭행했다"며 "이 피해자는 행사 시간 중 인턴을 했던 교포 여학생"이라고 밝혔다.
9일 오전 11시경,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 중이던 이남기 홍보수석은 방미 기자단의 숙소인 로스앤젤레스 밀레니엄 빌트모어 호텔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이 윤창중 대변인을 경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 윤 전 대변인이 한국에 도착,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은 뒤였다.
이남기 수석은 경질 사유에 대해 "윤 대변인이 박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개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됨으로써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이고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전 대변인은 현재까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있어서 더 이상의 정확한 진위 여부에 대한 해명을 듣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마이뉴스 2013.5.10.17:29-
-윤창중이 블로그에 썼다가 지운 글-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동지여러분,
이제 저는 나의 투쟁을 여기서 마치려 합니다. 늙고 쇠약한 저는 이번 사건으로 육체적 고난보다 권력에 눈 먼 자들의 배반과 음해 속에 심적 시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명예를 지키기보다 정치 희생양이 되어 버린 가족과 친구들을 살리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궁정정치의 볼모나 다름없는 실세들과 궁정경제의 피해자인 국민들을 향해 제가 박근혜의 처절한 복수 계획의 첫 번째 증거가 되었다는 말을 남김니다.
...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청와대의 대답을 기다리며 저의 많은 조력자들은 풍전등화의 시국형편에 부러진 대쪽보다 다수를 위한 굴복을 종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궁정 생활의 아부와 아첨에 혐오와 이력이 난 저로서는 고집스레 양심과 오기로 저항했지만 한국 언론의 마녀사냥과 부화뇌동하는 우민정치 수법을 한 사람이 맞서기엔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이제와 어리석게도 왜 박근혜가 저를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등용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손자병법에서 장재는 적을 유혹해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여 불씨도 남지 않게 철저히 박살내라고 했습니다. 지금 박근혜는 지저분한 일로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남기를 앞잡이로 이용해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좌우를 떠나 과거 친노정권에 협력한 경력이 있는 현 정권의 실세들은 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일야로 궁정을 떠나야할 때입니다. 지금 박근혜의 침묵은 다음 숙청 단행을 위한 중국 청나라 말기의 여황제 서태후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박근혜는 유년시절부터 청와대 생활을 시작해 궁정인들의 권모술수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시기와 질투에서 연명하기 위해 태생적으로 처세술에 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정희 암살 근 34년 간 멍청하게 보이며 적당한 때를 기다려 정적들의 복수에 집착해 온 그녀가 애국보수의 저마저 이렇게 거세시킬 줄은 청와대 입성 당시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밤낮없이 비난의 화살을 쏘는 많은 언론인들에게 선배로서 충고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6년 당시 KBS 보도본부 국제부에 근무하면서 상부의 조종과 외압 속에 언론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채 진상을 조작하고 또 은닉하며 궁정의 수발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이제 제게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키아벨리즘으로 연명하는 언론인들에게 연민의 정을 통감하며 인생사는 사필귀정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이제 저는 나의 투쟁을 여기서 마치려 합니다. 늙고 쇠약한 저는 이번 사건으로 육체적 고난보다 권력에 눈 먼 자들의 배반과 음해 속에 심적 시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명예를 지키기보다 정치 희생양이 되어 버린 가족과 친구들을 살리는 길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궁정정치의 볼모나 다름없는 실세들과 궁정경제의 피해자인 국민들을 향해 제가 박근혜의 처절한 복수 계획의 첫 번째 증거가 되었다는 말을 남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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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청와대의 대답을 기다리며 저의 많은 조력자들은 풍전등화의 시국형편에 부러진 대쪽보다 다수를 위한 굴복을 종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궁정 생활의 아부와 아첨에 혐오와 이력이 난 저로서는 고집스레 양심과 오기로 저항했지만 한국 언론의 마녀사냥과 부화뇌동하는 우민정치 수법을 한 사람이 맞서기엔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이제와 어리석게도 왜 박근혜가 저를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등용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손자병법에서 장재는 적을 유혹해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여 불씨도 남지 않게 철저히 박살내라고 했습니다. 지금 박근혜는 지저분한 일로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남기를 앞잡이로 이용해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좌우를 떠나 과거 친노정권에 협력한 경력이 있는 현 정권의 실세들은 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시일야로 궁정을 떠나야할 때입니다. 지금 박근혜의 침묵은 다음 숙청 단행을 위한 중국 청나라 말기의 여황제 서태후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박근혜는 유년시절부터 청와대 생활을 시작해 궁정인들의 권모술수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시기와 질투에서 연명하기 위해 태생적으로 처세술에 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정희 암살 근 34년 간 멍청하게 보이며 적당한 때를 기다려 정적들의 복수에 집착해 온 그녀가 애국보수의 저마저 이렇게 거세시킬 줄은 청와대 입성 당시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밤낮없이 비난의 화살을 쏘는 많은 언론인들에게 선배로서 충고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6년 당시 KBS 보도본부 국제부에 근무하면서 상부의 조종과 외압 속에 언론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채 진상을 조작하고 또 은닉하며 궁정의 수발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이제 제게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키아벨리즘으로 연명하는 언론인들에게 연민의 정을 통감하며 인생사는 사필귀정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