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시시한 시

풍금

김 영철 2024. 6. 27. 11:19

왼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그 뒤에 덧대어 콧수건을 달고

모서리가 닳고 헤어져 가시가 드러난 책상에 업디어

잘 여문 밤 알 같이 윤기가 흐르는

까맣고 새하얀 누름판을 건드리던

곱고도 가느다란 손가락의 놀림에 취해

여덟살 배기 나 는

콧물이 늘어지는 줄 도 몰랐다

겨울 바람에 우는 문풍지의 소리

그 뜨거운 여름 날

나무에 곧추 매달려

해 를 향해 대 들던 매미의 울음소리

번갯불이 번쩍하고

뒤미쳐 들려오던 천둥치는 소리

추운 겨울밤 앞 방죽에

얼음 꺼지는 소리

이 소리 저 소리를 모두 모아 놓은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풍금의 소리

반들반들 네모진 나무 궤짝에

병아리가 모이를 쪼듯 두드리고 찍어

꾀꼬리 보다 더 기막힌 소리를 내는

첨 보는 예쁘디 예쁜 여선생님에게 홀려

콧물을 훌쩍이며 따라 부르던 노래를

그래도 늘어지는 콧물과 함께 힘 껏 들이 마시며

앞 을 가리는 버짐먹은 머리통을

냅다 쥐어박아 버리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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