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 정월

칼국수집에서

김 영철 2014. 12. 25. 22:05

 

점심때 천 원짜리 석장을 쥐고

칼국수집 문 을 밀고 들어선다

제법 널따란 식당 안에는

가족이 같이 와서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근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같은 이

지나는 길 에 운전수도

거의 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탁자는 물론 의자까지도 자리가 없다

 

닭 삶아 우려낸 육수라고

실오래기 같은 닭살 여남은 가닥이 고명으로

밭 으로 달려갈 것 같은 겉절이에

노랗게 물들인 무 몇 조각이 전부인데

유난히 커다란 국수 그릇엔

희멀건 국물에 나무젓가락 같은

제법 굵직한 국수가락이 콧등을 치고

뜨거운 국물에 고춧가루를 풀어

눈 물 콧물에 뚝뚝 떨어지는 땀 을 훔쳐가며

삼천 원으로 외식을,

허기진 끼니를 때우고 있다

 

둘러보니 소줏병 놓인 탁자는

두어 상도 아니 되는데

모두들 아무 말 없이 국수 그릇을 비우고는

급한 듯이 물 을 입에 물고 일어서고

갑오년 성탄절 이언만

캐럴송 하나 들리지 않는 거리

저만치 앞 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신천지에 십상시 땅콩에 내란음모라는 데도

검다 쓰다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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