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수필)

김삿갓 묘역에서

김 영철 2017. 10. 21. 19:48

아침햇살이 유난히도 눈 부시던 날

강원도 영월 김삿갓 묘역을 찾아 나선 발걸음에 10월 하순 싸늘한 아침 맛 이 감돌고,

내촌으로 방향을 잡고 서파에서 가평으로 들어서는 길은 안개 자욱하니 드리워 모처럼 나선 길 산천구경은 접어둔 채

길벗으로 지고 온 소주로 서운함을 달래보나 춘천을 지나도, 홍천을 가도 걷힐 줄 모르는 안개가 답답하니 짓누르고 있다,

원주를 지나는 터널을 빠져나와 제천 땅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에 온 듯이 안개는 간곳없고, 

울긋불긋한 단풍을 머리에 인 봉우리 봉우리가 까맣게 올려다보이는데,

길섶에 우거진 잡초, 구붓하니 인사하듯 늘어 선 소나무며 참나무,

신림나들목을 휘돌아 나오니 술이 물 같이 흐른다는 주천!

김삿갓 당신은 이 마을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술값 낼 일 없이 주천에 앉아 시 한수 읊조렸을 당신 삿갓을 그려 봅니다.

 

-강가에서- / 덕보

너는 왜 흐르는가  

그런 나는 왜 가고 있나

흐르는 너 가는 나  

지나온 골짜기 새소리 그립건만

되돌아 갈 수 없는 차 안(此岸)을 지나면서

흐르는 듯 가는 듯이  너 는 그리로 가련만


여울지니 넌 흐르는가  떠밀려서 난 가고 있나

큰 굽이 내리는 물길 바람 불어 잔물결은 더해지고

그 물 주름에 실려가는 피안(彼岸)은 어디인가 

흘러도 속절없이 가더라도 미련 없이

나는 또 그렇게 가리라

 

정유년 시월에

끝없이 막아서는 봉우리며 산자락은 오리나무 가지를 지나 십리, 스무나무 건너 백리를 가도 타는 듯이 붉은데

천 길 마대산 능선 흘러내리다 마포천가에 잠시 멈춰선 자리 당신이 여기에 묻힐적에

같이 심겼을듯한 아름드리 소나무는 용미를 지키어 서 있고,

"詩仙蘭皐金炳淵之墓"흰 듯 검은 듯 한길 넘을 자연석에 새겨진 당신의 이름

개울가에서 건져 올린 반듯하니 천만년 물길로 다듬은 상석이며 혼유석

톱으로 켠 듯 네귀가반듯한 망두석은 당신이 누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바위였던게로구려

 

난고(蘭皐)!

당신의 아호를 불러 보는 나에 마음은 차라리"難苦"라 함이 어울릴 것 같은 이름

방랑 걸식에 한뎃잠을 자며 정처 없이 떠돌며 갖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감내하였을 당신은 차라리 神이었는데,

민들레며 개망초, 질경이로 덮인 묘역은 잡초 하나 없는 골프장 잔디밭보다 더없이 정 겹고

봄이 오면 온갖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겠으니 자연을 사랑하던 당신의 마음을 이렇게 또 봅니다.

황해도 곡산고을 못지않을 산 첩첩 수 청청한 버들고개 아래 양지바른 곳

눈물은 이강산 방방곡곡에 거름으로 뿌려주고 화순땅에서 마침표를 찍을 때 

방방곡곡을 더듬던 그 아픈 살점을 적벽강과 풍장지에 덜어내어 주고

고달펐던 뼈만 떠나갔던 곳에 돌아와 두 갑자넘이 누워 고을 이름이"김삿갓"으로 바뀌는 세상사를 지켜보셨습니다.

한 번은 당신을 찾아 술 한잔 올리리라 마음 먹은지 삼십수년에 오늘에서야 당신 앞에 서있습니다.

70년대 초 모신문에 연재되던 명기 열전 함흥기 가련 편에서 당신을 처음 본 후로

권오석 님의 "방랑시인 김삿갓"을 구해보고,

시인 고은님의 "김삿갓" 소설가 정비석님의 "김삿갓"으로 당신을 만나 보고

어줍은 생각으로 끄적인 생각 한편을 당신앞에 내어 놓습니다.

 

~삿갓과 해인~

할아버지 죄받은 대로

그대는 꿈을 접어야 했고

가난한 농가에서 생겨난 죄로

나도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

 

세상의 한 서린 가슴을

쓸어안고 살아야 했던 당신

원怨많은 흙덩이를 부여잡고

서러워하는 나

 

나그넷길 밟아서는 곳마다

그대 눈물을 뿌렸는데

밥 빌어먹으려 휘지 않는 허리를 

나는 꺾어야만 했다

 

꿰어진 코뚜레에 피 흘려 울고

짊어진 멍에에 짓눌려 울며

시 한수로 세상을 풍자하던 기개에

전봇대 위에서 세태를 보며 나는 웃나니

 

누가 알았으리오

두 갑자 세월을 넘어

당신을 그리며

하릴없이 덧붙여 볼 줄을

(2009.1.21.)

 

앞을 보니 막아서는 산이요 골짜기요, 옆을보고 돌아보아도 까마득히올려다뵈는 산봉우리

동강에서 점심먹고 예바로 왔소마는 세시가 좀 넘으니 해는 벌써 산마루를 넘어가는구려,

그 짓푸르던 나뭇잎은 노랗고도 붉은듯이 단풍이 들고 이른 낙엽은 산들바람에 한잎 두잎 날리우고

묘 역 앞을 흘러가는 냇물은 예나 지금이나 왔으니까 가노라며 혼자 울어갑니다 그려

함흥땅에서 인연을 맺은 가련낭자는 저세상에서는 가련하지 않을 사랑을 주고 계시는지요.

길주 명천 고을이며 대동강, 청천강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고 또 흐르고 있겠지만 

언제쯤에나 가볼 수 있을는지 모를 머나먼 곳이 되었고,

당신이 그리도 사랑하던 금강산이며 해금강은 전해오는 소식으로 나 보고 듣고 있습니다.


동강 서강이 어우러지며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꾸어다는 아우라지,

당신이 백일장에서 장원하던 영월동헌은 찾을길이 없고 삐쭉삐쭉 솟아오른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하루가 바쁜듯이 오가는 사람들로 길이 붐비는데, 당신이 집을 나설 때는 새벽이었겠지만

당신을 찾아온 나는 해거름에 버들고개를 넘어 황혼지는 하늘가를 치어다봅니다.

당신만 한 용기가 없어 마지못해 살아온 지난날들이 부끄러운데 죽어서도 살아 돌아온 당신앞에 서니

시선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려, 술 한잔에 해학과 풍자를 담아 시 한수 읊으며 걸식으로 끼니를 때울때

오죽하니 스무나무 시 를 읇었겠습니까마는,

 

-스무 나무 아래(二十樹下)- / 김삿갓
스무나무아래 서러운 나그네에게             (二十樹下 三十客)

망할놈에 마을에서 쉰 밥을 주는구나          (四十村中 五十食)

사람으로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人間豈有 七十事)

차라리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겠구나  (不如歸家 三十食)

 

그러한 당신을 잊지않고 기리느라 많은 걸객이 구녕 가게에,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소주를 삼키고,

발 벗어 건너던 개울에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고 다리를 쉬어가던 바위는 치워지고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덮은 신작로가 널따라니 길을 이루고 있는 지금, 

나온지가 60여 년쯤 되었을"방랑시인 김삿갓"노래를 

돌아오는 길 반주를 따라 부르는데,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참고 참았던 날 울립니다.

 

"석양지는 산마루에 잠 을 자는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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