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작위 받은 후레자식들
후작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박영효, 윤택영, 이해승
백작
이지용*, 민영린, 이완용(李完用)*
자작
박제순* 조중응*, 고영희*,이용직,임선준*,이재곤*,민영휘,이기용,이병무*,윤덕영*,민병석*,
김성근,민영소,이근명,김윤식*,조민희*,민영규, 송병준*,이하영*,이근택*,권중현*, 이완용(李完鎔)
남작
이용태, 남정철, 유길준, 최민석, 조동윤*, 민상호**, 장석주, 이재빈, 한규설, 이근상**,이근호*,
한창수**, 성기운, 박기양, 김사준, 이건하, 이재극*, 조희연, 윤용구, 홍순형, 김석진, 이주영, 김병익,
김사철, 조경호, 정낙용, 민형식, 정한조, 윤웅렬, 박용대, 김가진, 민종묵*, 김종한, 이봉의, 조정구, 김춘희, 민영기*,이용원, 조경희, 이정로, 민영달, 이종건, 김학진, 이윤용*, 김영철
(이름 뒤 *는 매국에 공헌이 많아서 훈1등 **는 훈2등을 받은 자임)
작위를 거부한 분들
김석진, 조정구, 한규설, 홍순형, 민영달, 조경호, 윤용구, 유길준
"김석진"은 작위 받기를 거절 자살,
"조정구"는 자살미수,
"조희연"은 생전을 「일제」의 남작으로 살다가 죽으면서 작위를 반환했다.
"김사준", "김윤식", "이용직", "김가진"은 후일 독립운동과 3·1운동에 관여함으로 작위를 박탈당함.
「은사금」후작:15만원, 백작:10만원, 자작:5만원, 남작:3만원의 「은사공채」를 교부 8·15광복 때까지
은행 예치 금리만을 지급하고 원금은 주지 않았다.
1910년 한일합방시에 일본에 적극 협조해서 그 공로로 일본에게서 귀족으로 인정받고 금은보화를 챙긴
사람들 명부 아래의 76명 중에, 그 소속 당파를 알 수 있는 인물은 모두 64명.
그중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이고,
후작 이재완(왕족, 승계 이달용)
후작 이재각(왕족)서울
후작 이해창(왕족)
백작 민영린( 민비(명성황후) 오빠)
백작 고희경( 중인)서울
자작 권중현(한미한 가문 출신) 충북 영동
자작 이하영 (한미한 가문 출신)경상남도 동래군(현 부산)
자작 이병무(한미한 가문 출신)출생지 미상
남작 박제빈(소론, 승계 박서양)
남작 김춘희(소론, 승계 김교산)
남작 박기양(소론)
남작 장석주(평민, 승계 장인원)
남작 최석민(중인, 승계 최정원)
남작 이봉의(소론, 승계 이기원)
남작 민종묵(북인, 승게 민규현)
남작 박용대(북인)
남작 정한조(소론, 승계 정천모)
남작 이주영(소론, 승게 이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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