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에 바보의 눈물

순교터 에서

김 영철 2020. 9. 3. 12:51

구읍천이 한내와 만나 그 물줄기가 더 큰 한내로 흘러들면서

구읍천이란 이름이 끝나는 곳,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723-3 번지

홍인과 레오라는 세례명으로 구한말 천주교 신자가 포천현이 있던 곳에서

오 리 남짓 떨어진 이곳에서 사형집행이 이뤄졌던 것은 어떤 연유였을까,

구읍천은 포천현 관아에서 일 리도 채 안되는 앞 을 흘러 순교터에 이르는데

가까운 개울가를 놔두고 왜 굳이 이곳을 사형 집행장으로 선택하였는지 생각을 더듬어 본다.

 

굴 고개 마루에 떨어진 빗물이 논배를 지나 내 어릴적 기억으로는 피머리란 옛 이름을 가진

직두리를 들러 풍류산을 휘감아 돌고 현감이 호령하던 읍내를 비켜 이성계 벌판 끄트머리에서

한내로 어우러져 한탄강으로, 종내에는 임진강으로 흘러갈 적에,

옛 이름은 잊힌 지 오래, 구읍천이란 어설픈 한자 이름을 버리고 한내에 아우라지던

그 끄트머리가 사람의 한 생과도 같을 것 같고, 더 큰 세상으로 가려면,

지나온 이름일랑은 버려야 하는 작은 냇물의 운명과도 같은 이곳에서 

망나니의 칼 앞에 무릎을 꿇고 한내를 바라보았을 두 사람을 그려본다. 

 

지금도 그 자리를 형조의 후신 포천경찰서가 떠나려는 원혼을 붙잡고 있을 듯이 덜미를 지키어 섯고

순교터에 닦인 북관대로를 오가는 수많은 차량들과, 예 나 지금이나 그 자리를 흐르고 있는 한내를,

그림으로 남은 두 순교자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칼

질끈 동여맨 머리띠 아래

핏발 선 눈

고슴도치 같은 수염

햇빛에 번뜩이는 큰 칼을 휘둘러

늘어뜨린 목덜미를 스쳐 혼 을 뺄 적에

넋 나간 눈길에 스쳐 지나가는

 

하늘!

땅!

구름!

그리고 바람!

 

엄마!

아부지!

가시버시!

딸아이!

아들네미!

 

눈동자에 새겨둔 얼굴 

차마 볼 수가 없어

두 눈을 질끈 감아 잊으려는 듯

아득하니 멀어지는 통곡

힘 없이 허물어지는 몸

혼 불 한줄기 스르르 피어오른다

 

엄마 젖 물고 흘리던 배냇 짓

철없던 개구쟁이 시절

반려를 만나 약속했던 백 년

천년을 지켜주리라 다짐하던 자식

부모를 앞서는 불효

이루지 못한 꿈 덩그러니 남겨놓고

이 모래밭에 업드려 있다

 

바라보던 그 곳은 헛 것 이었나

부질없는 삶에 무엇을 얻으려 살았는가 

아! 이 세상 모두가 한 바탕 꿈 이 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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