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울 할아버지께서는 가족에 대해서도
세상사에 대하여도 별 로 말씀이 없으셨다.
무슨 일을 하시려면
할아버지 혼자서는 안되는 일 이라면
초등학교 3.4학년 밖에 안 되던 둘째 손주인
나 를 불러 내시고는 하였다.
여물을 썰어도,
나 또한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할아버지가 하시는 일 을 신기한듯 바라보고
따라서 흉내도 내어보고
요즘같이 추운 겨울이면 할아버지께서는
이 짚을 깨끗이 추려 물에 적셔 두었다가
밤 에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실때면
저 많은 지푸래기를 언제 새끼줄로 꼬실까 걱정되어
어설픈 손길로 할아버지 옆에 앉아
새끼를 꼬는것 보담 짚단에 부피를 빨리 줄여보려
잡아당기면 끊어지던 새끼를 꼬아도 보았다.
아버지도 아들 4형제를 두셨지만
힘든일과 농사일에는 유독 나 만 불러내어 시키셨는데
쇠스랑으로 밭 을 일구는 일 이며
뒷간에서 재 와 섞인 변을 퍼 다가
삼태기에 담아 콩 심을 자리에 재 를 넣는
무거운 재 삼태기를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린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팠고
놀고 있는 형과 동생들을 볼때면 부아가 치밀었었다.
돌아가신지 14년이 넘었지만 그 어릴때 부터
20대가 될때까지 노상 듣던, 꾸중같은 말씀
「이놈아 모 난 돌이 정 맞는 법 이야
네 놈은 서서 똥 싸더냐!?
세상 둥글둥글 모 나지 않게 살아야 하고
죽은듯이 있어야 살아남는 법이야」
고된 들 일, 밭 일을 하면서도 새참에 이웃집 밥을 먹으려 들지않고
받은만큼 갚으려는 나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에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미운 오리새끼같은 나 를 대하는것은 아버지나 엄마나 다를바가 없었다.
그렇게 미운 손주놈이 안타까워 그러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유독 기대를 하시는 모습이셨다.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돌아가시고
그 모질던 엄마도 1년째 요양원에 계시고
나도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봐도
왜 엄마 아버지는 날 그리도 어렸을적에 미워 하셨는지
아직도 그 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놀러왔던 대한이가 얼어죽었다는 소한이 얹그제
한겨울에 복판에 서서 이 겨울을 이겨내기가 버거운데
내일 아침은 영하20도가 넘이 내려간다니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