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에 우는 천둥소리

월남의 달밤

김 영철 2013. 9. 11. 15:34


나 국민학교 다닐 적

월남 파병가는 맹호부대 노래를 

운동회ㅅ 날 응원가로 목이 쉬어라 부를때

월남이 월맹에게 전쟁에서 지면

우리나라도 북한에게 적화통일 된다고


십수년 전쟁기간

맹호,청룡,백마부대가

월남사람들 자유를 지켜주려다

종내에는 월남이 패망하니 

북괴가 우리를 곧 그리 만드리라 

높으신네는 원수같이 말씀하시며


공산화된 월남 자유민들은 

북한같은 공산치하에서

강제노동수용소며 아오지탄광에서

비참하게 죽어갈거라기에

나 는 서러웠다


위정자가 백성을 지켜주는것이 아니라

백성이 정치꾼을 만든다는걸 알아버린 어느날

십자성부대 반창고가

비둘기공병 삽질이

귀신 못잡고 귀신을 만들어준 청룡이 그리 슬플수가 없더니만


십여년이 지나

다 죽은줄 알았던 월남사람이

텔레비젼에  내 곁에 자주보일때

자유를 지킨다고 우리가 휩쓴 그자리에는

따이한 증오비가 수없이 세워져 있노라니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비문을

소문으로 듣다 믿기지않는 사진을 보고

나는 너무나도 서러웠다


자유를 반공을 핑계삼아

동족을 무참하게 도륙하던 한국전쟁의 광끼가

이역만리 월남땅에서 벌어질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육의 광란을 자유수호라 외치는 

그때나 이제나 가증스런 정치꾼에 홀렸더니라


공산화된지 어언 삼십 팔년

월남의 달밤은 더 없이 밝기만하고

우리보다 못할것 없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날

자유를 지켜주고 공산화를 늦춰줬다는

우리는 어두운 이름으로 증오비에 새겨져

천만년 지고 살아가야할 죄악으로 남아서도


부패한 권력을

더러운 부귀를 저희들끼리 영원하게 누리고자

오늘도 이 땅위에 종북을 두들기며

미친듯이 왜 낫을 휘두르는 무리앞에

나 는 서러워  끝내 우노라

나 는 못내 서러워 업드려 우노라


<베트남 꽝응아이 한국군 만행 증오비>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1966년 12월 5일 정확히 새벽 5시, 

출라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남조선 청룡여단 1개 대대가 이곳으로 행군을 해왔다. 

그들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 죽였다. 

다음날인 12월 6일, 

그들은 계속해서 꺼우안푹 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명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했다.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군대가 저지른 죄악을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기고 인민들의 마음을 진동토록 할 것이다. 

그들은 비단 양민학살 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도우저를 갖고 들어와 모든 생태계를 말살했고, 

모든 집을 깨끗이 불태웠고, 우리 조상들의 묘지까지 갈아엎었다. 

건강불굴의 이 땅을 그들은 폭탄과 고엽제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로 만들었다.


붕따우 마을을 찾았다. 마을은 평온했다. 현재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 한가운데에 마을회관이 있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광개토대왕비를 연상시킬 만큼 장방형으로 된 거대한 비석이 시멘트제단 위에 우뚝하게 서 있다. 

바로 ‘한국군증오비’다. 비석 윗부분에 흐릿하게 큰 글자로 ‘CAN THU’라고 쓰여 있다. 베트남어로 ‘CAN(깐)’은 ‘한(恨)’이란 의미이며, 

'THU(투)’는 ‘복수’나 ‘원수’의 ‘수(讐)’를 뜻한단다. 얼마나 원한에 사무쳤으면 이런 비석까지 세워 기억할까. 마음이 착잡하고 불편했다. 

종전 이듬해 76년에 세운 이 비석 말고도 뚜이호아 시내 중심지에 또 다른 증오비가 있었다. 

하지만 푸옌성 정부의 도시계획에 따라 지금은 철거됐다고 한다. 증오비의 글은 풍상에 씻겨 알아볼 수 없다. 글을 새겨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박사는 1966년 1월2일, 청룡부대의 제퍼슨 작전 도중 저지른 학살이라고 했다. 

아랫마을에서도 민간인학살이 있었는데 그건 맹호부대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구 박사는 “베트남은 70년대 말~80년대 초 베트남전역의 민간인학살지역을 조사했다. 

이곳의 경우 어린 아이 부녀자, 노인 할 것 없이 한군데에 모아 놓고 총과 수류탄을 쏜 다음 집을 불태웠다. 

그리고 불도저로 구덩이를 판 다음 시신을 한꺼번에 묻었다. 붕따우 마을에서 37명, 인근 토럼 마을에선 42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한편 베트남 푸옌성기자협회는 이 지역에서 한국군에 의해 20여건의 집단민간인학살이 있었는데, 

1천7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호아히엡남사에선 붕따우·토럼·다응우촌 등 3곳에서 12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학살자행한 한국군인 꼭 만나 물어보고 싶어…왜 그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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