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시민연대

10.26혁명

김 영철 2022. 8. 27. 19:14

1979년 10월26일! 대한민국의 종신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가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의 권총에 사살되어 서울의 봄을 알리던 날, 이 날은 70년 전인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의사의 권총으로 이등박문(이토오 히로부미)가 사살되어 조선청년의 기개가 세계만방에 드높여진 날 이기도 합니다.

 

이 10.26으로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무너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회복할수가 있었지만 이 의거를 실행한 여섯사람은 내란목적살인이란 죄 로 사형을 당하여 수의도 갖춰입지 못한채, 신군부에 의해 장례절차도 없이, 경기도 각지 공동묘지로 흩어져 묻혀지고 火葬으로 태워졌듯이, 안중근의사도 왜놈들 법 에 의해 다음해 3월26일 사형을 당하고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우리는 찾지 못하고 있는것과 같이 전두환군부도 여섯의인을 공동묘지에 강제 매장한것은 왜놈이나 신군부나 어쩌면 그리도 같은지, 우리는 전두환군부의 잊을것을 강요받았고 그들이 의도한대로 지금까지 우리는 잊고 살아왔던 것 입니다.

 

안중근의사를 사형시킨 왜놈들의 법이나 김재규의사를 사형시킨 유신헌법이나 다르지않은 악법인 그들의 법 대로 내란목적살인 이었다면 대한민국은 유신독재를, 긴급조치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로 지금까지 이어졌어야 할것이고,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면, 이 10.26은 혁명이어야 하고, 이 를 실행한 중앙정보부장 고김재규장군과 육군대령 고박흥주, 중정의전과장 고박선호 그리고 고이기주 고김태원 고유성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한 의인(의사)으로 신원과 명예가 회복되고 이땅의 민주주의와 함께 진즉 복권되었어야 할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42년이란 시간동안 유신독재가 사라진 이 나라에서 자유만을 찾고 향유하려 했을 뿐, 독재자로부터 무고한 민중이 대량학살될 위기에서 인민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치않고 목숨을 바쳐 백성과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여섯 의인을 그대로 공동묘지에 내버려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5.18로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등장한 전두환 이후, 이 나라에는 민주정부가 세번이나 들어섯어도 이 여섯 의인들은 잊혀진 사람들로 공동묘지에 아무렇게나 묻혀 있어야 했으며, 유족 또한 세상의 이목을 피하여 살아야했던 세월이 무려 42년여, 유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것이 대한민국의 정의이고 현실앞에 참담함을 어찌할수가 없음이 어찌 나 하나뿐이고 우리민중 이겠습니까.

 

이런 무의식으로 인해 5공 전두환군부에 의해 민중이 살육을 당해야 했고, 여기에 부화뇌동한 김영삼이로 하여 환난까지 격어야 했습니다. 어렵사리 집권한 국민의정부도 참여정부란 민주정부도 이 나라의 정의가 무었인지 인민에게 보여주지못한 댓가로 이명박근혜 정권치하로 인민을 몰아넣어 천안함을,세월호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정농단에 치를 떨면서, 이를 보다못한 민중이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탄핵하여 다시 되찾아준 민주며 정의를, 문재인정부 또한 수수방관하며 외면한 결과 이번에는 검찰이라는 무소불위의 막무가내 집단에 정권을, 인민을 내 던져 주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수백년전 부터 지금까지 정치가 이 나라를, 무고한 인민을 구했다는 기록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외침을 당해도, 왜란에 호란으로 나라의 존망이 갈릴때도, 왜놈에게 나라를 빼았겼어도 이 땅위에 정치는 힘 가진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학살하고 핍박하는것을 업으로 삼았던 것 들이 군주요, 대통령이요, 정치인이니 하는 무리들 이었습니다.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으로, 자유당 이승만의 친일독재로 부터,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맞서 10.26으로, 의인이 죽음으로 나라를 누란으로부터 건지고, 민중이 목숨을 던져 민주주의를 되찾아 와도 이 나라를 이끈다는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제 몸뚱아리 하나 영달과 재화를 위해 인민의 삶 을 내팽쳐버린 참담한 결과 앞에서, 지금의 검찰독재에 맞서 어느 누가 목숨을 걸 것이며, 어떤 정의로운 이 가 나설것이고, 앞서 깃발을 들겠다는 정치인이 있을것이라 믿을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정치에 이 나라의 정의를 언제까지 맏겨둘수는 없습니다. 정치를 믿고 기다리기에는 그 세월이 너무 많이도 지났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만큼, 우리를 구한 목숨만큼, 우리는 얻은만큼 값아야 할 빚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공동묘지 비탈에 의인들이 계시게 할수는 없음 입니다. 고김재규장군의 산소에 이어 보름전 고박흥주대령 무덤을 어렵게 찾아보니 가족들만이 찾는곳으로, 묘역은 관리도 되지않는 공동묘지에서 회한의 세월을 삭이고 계시고, 그리고 고박선호예비역해병대령 유족께서는 위치공개를 아직도 주저하고 계십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날 경술국치일!,  빗방울이 눈물이듯 떨어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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