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긴 밤을 지새우고 날 이 밝기를 기다려 무작정 차 를 몰고 나섰다.
차 연료량을 보니 100km쯤 갈 수 있다고 표시 되는데,
마음 같아서는 1,000km를 달려도 응어리진 덩어리가 풀릴것 같지 않아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우고 차량이 한산한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잔영이 남아있는 옛길을 찾으려니 남아있는 곳이 화현에서 김화 까지다.
번잡한 4차로를 벗어나 옛길로 들어서서 일동,이동을 지나 철원 경계인
자등령까지 가는 동안 산천은 그대로 인데 나 만 변한것 같은 서러움 들고,
자등령에서 차 를 세우고 돌아보니 각흘산 오르는 등산로가 보이기에
눈 쌓인 산 비탈을 오르려니 발목까지 오는 부츠속으로 눈 이 넘어오고
나뭇가지에 얹혀있던 눈 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진다.
산 에 오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선 길
한참을 오르다 북녘을 바라보니 북한땅 인듯 한 높은산 하나가
검은점 하나없이 눈,서리에 온통 하얗게 보이는데, 포천과 불과
60여 킬로 북쪽이라고 이리도 다를수가 있을까.
지나온 길에 본 1,000미터가 넘는 강씨봉이나 국망봉도 저렇게
눈 에 덮여 있지는 않았었는데, 차 에 있는 온도계는 자등령이
영하12도라고 하는데 저곳은 얼마나 더 높고 또 춥기에 저럴까.
저 쯤에 사는 북녘동포들은 이 강추위를 어찌 견디고 있을까를
넋없이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눈 내리고 난 후 아무도 오른 흔적없는 산 길
나뭇가지에 매달린 산악회 이름 선명한 헝겊쪼가리만
바람에 날리우는 것 외에는 동물의 흔적조차 없는 등산로
눈 위에 찍혀진 나의 발자국 하나 산 을 향해 오르고 있다.
-김화에서- / 김해인
새로 닦은 큰 길을 두고
두개의 차로로 무심히 가고 오는
그 구부러진 옛 길을 따라
난 춥고 무섭다는 북녘으로 간다
백두의 기운이 서울로 흐른다는 산줄기를 거슬러
애기봉을 지나 강씨봉 앞에서
징검다리 건너 백운계곡을 거쳐 화천으로 갈까
약사 깊은골을 지나 백골이 흩어진 김화로 갈까
광덕고개 너머 사창리를 가도 거기서 그 뿐
자등령을 넘어 와수릴 가도 거기까지
한번 더 용양 삼거리에 서서
동 으로 말고개를 넘어가면 화천
한탄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면 철원
김화라 부를까
금화라고 쓸까
북녘에서 내어준 귀퉁이 조금
남녘에 붙어 있는 땅 위에서
북녘으로 이어지는 길 은 흔적하나 없이
지척으로 보이는
눈 서리 하얗게 뒤덮어 쓴채 아무말이 없는
오성산을 먼 발치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다
달 지고 구름 오는 곳 서쪽으로
속절없이 돌아설수 밖에 없는
내 나라 내 땅도 마음대로 갈수 없는 곳
철책으로 가로막고 폭약을 묻어
가까이 오면 죽는다는 팻말 앞에서
오줌을 지리며 떨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