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울릉으로 칠순여행

김 영철 2025. 4. 29. 07:05

알람이 울린다.

휴대폰을 보니 새벽 130

일찍 잔다고 잠을 청한게 어제 저녁 아홉시 반

평소 같으면 한잠을 자고 뒤척일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깨지않는 잠을 좇으려 미지근한 물로 머리를 감고, 특별할 것 없는 옷이지만 아내가 깨끗하게 세탁해준 저고리를 걸치고 거울을 본다.

 

스물일곱해 만에, 아픈날도 많았고 정 도 들었던 곳,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 칠순여행,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외국이라고는 가보지 않은 내게, 가까운 외국으로라도 여행을 권하는 아이들에게, 내 발로 걸어 이 나라 내 땅을 마음대로 다녀보기 전에는, 결코 외국여행은 가지 않는다는 오기를 부린것과 함께, 막내눔 너댓살때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는 곳으로, 가족 모두의 추억여행지로 선택한 울릉도 여정, 큰애가 운전하는 스포티지 뒷좌석에 아내와 앉아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은, 우리 가족이 울릉을 떠나온지가 스물일곱해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데, 룸미러에 비치는 얼굴은 마흔셋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 서글픔으로 비쳐진다.

 

새벽 여섯시 강릉에서 출항하는 씨스타5’에 승선하고 바다로 나서니 그때나 지금이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는 변함이 없고, 미처 멀미약을 준비하지 못한 승객일부는 화장실로, 검은 비닐봉지를 찾아 휘청대며 선실을 바삐 오가는 모습을 보며, 독도경비대에 위성을 통한 공중전화를 설치하러 가기 전날 폭음을 하고, 해경 509경비함에서 생전처음 배멀미를 해본 것 외에는, 멀미를 모르는 나는 느긋이 파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한국통신 동료들은 모두 떠나가고, 울릉 토박이로 고향을 지키는 형님과 전화로, 아우님과는 페이스북으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던 대여섯분 외에는 잊혀진 이름이고 얼굴들인 울릉은 옛모습 그대로인데, 아직 지지않은 붉은 동백꽃을 보노라니 년년세세 화상사 세세년년 인부동이라던 중국 옛 시인의 글귀가 생각이 나고 콧등이 시큰해 오는 거리에는, 예전의 눈에 익은 집들은 몇채 안보이고 새로지은 높아야 너댓층 신축건물이 늘어 섯어도, 다행히 우리가족이 살던 옛집은 그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여기가 우리집이었다고 서른넘은 막내도 기억을 되살리며 앞마당이 넓었더랬는데 골목이 되었다며 아쉬워 한다.

 

울릉도 표현으로 가요(노래)주점을 지금까지 운영하시는 형님께서 차량과 가이드를 맡아 울릉일주를 하는중, 우리가족이 살던 저동에서 어느 봄날의 토요일, 바다가 길을 끊어놓아 마음먹은대로 어디로든 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달래려, 화전민이 살던 폐가된 너와집을 찾아가면 천부로 갈수있다는 얘기를 듣고, 네 살배기 아들눔의 손을 잡고 산 을 올랐는데, 얼마안가 아이는 다리가 아프다 칭얼거려 업고, 섬조릿대가 우거지고 잡초가 덮여 산길마저 희미해진 대숲을 헤쳐가며, 평지가 없는 산길을 기다시피 두세가구 폐가된 너와집을 지나다 보니, 잠이 든 아이를 업을수도 없어 꼬박 안고, 이십여리가 넘는 산을 넘어 천부 바닷가로 나왔던 기억을 얘기하니, 아들눔은 빙그시 웃고, 형님은 여기가 어디라고 이 험한 산길을 넘어왔냐며 아들까지 잃을뻔 했다시기에, 울릉도에는 산짐승과 뱀이 없다기에 아무 걱정 하지 않았는데, 며칠을 팔을 움직이기가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더듬으며 옛 자취를 찾아도, 그날에 걸어 넘어오던 산길은 급경사이기는 하지만 제법 너른길로 포장이 되어 그때의 옛길은 찾을수가 없었다.

 

떠나온 이후로 바뀌고 변한 울릉도를 알려주시는 형님이 아니 계셨더라면, 일주도로를 따라 옛 기억만 더듬었을 뿐인 여행길에 절경과 오지체험, 새로운 풍광을 보는 것은 아마도 힘들었겠단 생각이 드는데,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저동 선착장을 찾아 고무함지박에, 울릉도에서만 먹어 본, 붕어 비슷하니 생기고 호랑이 무늬보다 붉은 매바리 두 꾸러미를 사서 회를 떠, 저녁밥상 전에 형님과 아우님, 아들과 함께 소주를 들이 붇다 시피해도 끄떡없는 것이, 소주가 배 타고 오다 멀미를 해서 제 도수를 내지 못한다던 울릉도 술꾼들의 얘기가 거짓말은 아니란 듯 거푸 마셔대고야 말았다.

 

삽십여년 가까이 바다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고, 폐쇄공포증 같은 느낌이 들던 것은, 정권과 권력에 대드는 노동운동에 대한 댓가로 절해고도에 우리 가족 모두가 갇혀버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짖누르는 짐의 무게를 이번 여행으로 조금은 덜어냈다는 것을, 그리고 강릉으로 오는 뱃길에서 멀어지는 울릉도를 바라보며, 어느정도 내려놓고 왔다는 해방감을 아니 가질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 홍천의 유명하다는 한우구이 집에서 점심을 하며, 어느덧 나의 세대는 가고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시간이라는 공간에 섯다는 것에, 꿈인 듯이 가물가물한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며, 칠순이라는 숫자 앞에서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더 울릉도를 가볼수는 있으려는지, 울릉을 떠나 오면서 두손을 마주잡고서도 다음에 볼 날을 기약하지 못하는 빛바랜 자신감이듯, 울릉 형님도 아우님도 약속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뭇없는 세월속에서 체득한 지혜가 아닐까 서글프기만 한데, 아픈 가정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얼굴 한번 보자 소주한잔 하자 불러보지 못한 지인에게, 다음에 만나볼 기회가 온다면 무어라 변명을 해야하나, 기약하지 못하는 내일을 걱정하며, 아픈 허리를 두드리듯 시간과 공간속으로 묻혀버린 기억을 헤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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