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주기 위령사
10월의 포천은 각종 축제며 행사로 잔치집 같은 날의 연속입니다.
하늘은 높고 단풍으로 곱게 꾸민 산하는 새색시 같은 고운 자태를
저마다 뽐내 보이고, 들녘에는 여름내 키우고 익힌 낱알을 거둬
들이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기만 합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 축제가 아닌 위령제를 모시려 둘러선 저희들의
가슴속은 납덩이가 매어 달린 듯 한없이 무겁기만 한 이 가을날,
슬픔은 언제나 그렇듯이 가난한 이들의 삶 이 되었고,
아픔은 약한 이들이 끊어낼수 없는 족쇄가 되어 기쁨을 잊은지
오래된 채로 운명이듯 여기에 남아, 사랑하는 이 에게 마지막
작별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채, 어느곳에 어떻게 묻혀 버려졌는지
알수도 없이 흩어진 넋이기에 이 고개 이름이 무넋고개라 이름지어
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74주기를 맞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집단학살 매장지를 품은
무럭고개의 슬픔앞에서 다시는 이 땅위에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두 번째 위령제를 지내는 지금, 작금의 정권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은채,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으로 촉발된 접경지 오물풍선 낙하와 드론침투
여부를 넘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엄포에 드론작전사령부가 있는 포천은
북한의 제1타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각자도생의 전쟁의 위험으로
거침없이 국민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열흘전 이 나라에는 76년전의 제주4.3과 여순혁명, 그리고 44년전의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듯,
이웃 동두천에서는 한국전쟁이후 여성인권유린의 대명사인 미군위안부
성병관리소를 철거위기에서 지켜내려는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라고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행위에 맞서, 50여일넘게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 땅위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민중은 지우고 싶은 과거를 잊지않고 아픔도 슬픔도 함께 하겠다는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 뜻깊은 투쟁이라 아니할수가 없어 이 자리를 빌어
작가와 평화시민행동에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는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참여정부 고노무현대통령은 이 속담을 빌어 머뭇대는 세태에 대해
분노 하였습니다. ‘나서지 마라 넌 뒤로 빠져라’라고 밥상머리에서 두려움을
심어주는 부모님의 걱정을 따라 그들은 권력에 맞서기를 주저했고
뒤 끝을 염려했으며 눈치보기를 하다, 어느때 유리하다 싶게 사정이 변하면
거침없이 나서 공을 제것으로 만들고, 동지를 배신하는 것을 넘어 적과의 동침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슬프지만 이런 참담한 과거로 얼룩진 것이 이 나라 위정자들과 소위 엘리트라는
지배층의 행태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숨길 수 없는 얼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땅위에서 다시는 민간인 집단학살을 부르는 전쟁과, 외국군에 의한
가엾은 여성과 어린이의 희생을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에 모여 변변치 못한 제물에, 갖추지
못한 예절일망정,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속절없이 바람에 날리워
이 가을 낙엽같이 스러져 간 참혹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총부리에 피어나는 연기와 같이, 이 나라 이 산하에 이름없이
묻히신 영령께 제 를 올리는 것입니다.
바쁘신중에도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내외빈과 유족님, 시민 여러분,
그리고 고단한 길을 함께해 주시는 포천깨시민연대 동지님들, 번듯한 자리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자리를 마다하시고 음습하고 적막하기 그지없는
골짜기에서 앉을자리도 없이 찬 기운을 이겨내시는 여러분께 죄송스러움을
숨길수가 없고 고맙고 감사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가정이 화목하시기를 기원드리며, 어줍잖은 말씀으로
위령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꿈같은 소리(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상계엄 포고령 제1호 (1) | 2025.03.30 |
---|---|
혁명으로 가자! (2) | 2025.03.26 |
22대 총선에 부치는 소회 (0) | 2024.04.15 |
'습격범' 이라? (1) | 2024.01.11 |
항저우에서 (1) | 2023.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