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대소리 시월

귀뚜리

김 영철 2021. 10. 15. 21:31

새벽에

무슨 할 짓이 그리 없어서

흙 속에 묻혀 어둠 속에 자라난 뿌리를 더듬고 있나

바위틈을 헤집어 내리고 엄동설한에도 얼어 죽지 못한

그 기나긴 세월이 너무 아파서

 

한낮에

말 못 한 사연이 무에 그리 많기에

대나무에 구녕 뚫으며 하소연을 하라 칼질을 하는가 

속 빈 댓가지를 울려 또 누구를 울리려 하랴마는

혀 가 떫어서 옮기지 못한 말을 대신 전 하려

 

해 질 녘

남에 가죽을 벗겨 나무통에 씌우고

방망이로 두드리며 울음을 우는 것은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같이 겪어보려 한다지만

밤가시에 찔림에도 움찔하는 인내가 부끄러워서

 

밤 참에

잠들기도 아까운 시간 속에

가나다라마바사를 짜 맞추고 있나

아수라에서 다투는 아귀들에 이 처절한 외침을 쓰노라

밤새워 손가락에 굳은살을 박아 넣으며

 

하루를

얼마 남지 않은 술병을 부등켜안고

취하지 못한 빈 지게를 짊어지고 지나온 길 이

취할 수 없는 허망한 꿈을 꾸느라 흘려버린 헛 된 세월을 

얻지도 이루지도 못한 제 설움에 겨워서 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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